호화 주택 살던 사우디인들이 아파트에 살게 된 사연

글, 어예진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경제TV에서 기자와 앵커로 일했고요. 지금은 국내 경제,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이번에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땅, 사우디아라비아로 가 봅니다.


라떼는 말이야…


요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아버지 세대들이 이런 푸념을 하는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때는 말야, 대가족이 한 집에서 오손도손 함께 살았는데, 요즘 애들은 참 욕심이 없어~”


사우디아라비아도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2대만 한 집에 살아도 대가족을 이루는 풍경이 제법 흔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일부일처제를 선호하고, 지속적인 출생률 저하까지 겪으며 대가족도 옛말이 되었죠. 


1970년대 사우디의 출생률은 7명 대였지만, 2000년 4명 그리고 2023년인 지난해 2.1명으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된 건 사우디 청년 역시 취업난, 고물가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대가족 사회였던 사우디가 핵가족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흥미로운 건 사우디의 이러한 가족 구성 변화가 주택 형태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가족 구성원이 많다 보니 방도 많아야 했는데요. 그래서 사우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큰 주택을 선호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사우디 정부가 제시하는 ‘서민용’ 국민주택 넓이가 55평이었던 걸 생각하면 감이 좀 오시나요? 불과 3~4년 전까지도 이 형태가 유지되다, 최근 들어 국민주택 기준이 36평대로 하향 조정되었습니다. 핵가족이 많아지면서 방 많은 집보다, 그냥 집이 많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우디 사람이라면 ‘주택’에 살아야지


변화하고 있는 사우디의 주택 상황을 이해하려면 기본적인 사우디 사람들의 거주 형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사우디 국민들은 실제로도 단독주택에 주로 삽니다. 서민이 사는 주택이라고 해도 손님 접대용 거실과 가족용 거실이 따로 있는 구조가 기본이에요. 


참고로 사우디 집은 단독주택이든 공동주택이든 집에 들어가는 문이 두 개가 있는데요. 남녀구별이 엄격해 출입문을 따로 두었다고 합니다. 지금에야 그런 남녀 분리제도가 철폐됐지만, 과거에는 시아버지가 며느리 얼굴을 모르고 살 정도였다고 하네요.

출처: Arab News


서민 주택이 그 정도이고 중산층 주택은 규모가 훨씬 커집니다. 수입 규모에 따라 타운하우스, 빌라, 단독 주택 등으로 나뉘지만 대부분 화장실만 대여섯 개에 손님방, 가사 도우미 방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이들 주택들은 대부분 담장이 매우 높습니다. 2층까지 가려질 정도인데요. 외부 시선으로부터 부녀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에요.

출처: sa.aqar.f

출처: sa.aqar.f

상류층으로 가면 차원이 달라지는데요. 겉으로 보면 3층짜리 콘서트홀 같기도 하고, 작은 성 같기도 한 대저택에 살고 있습니다. 거실만 서너 개에 수영장,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있는 집이 많고요. 심지어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집도 있다고 합니다.  

사우디의 고급 주택.
출처:
사우디 왕족이 사는 ‘place’.
출처:

사우디에도 물론 아파트형태의 공동주택이 많습니다. 한국의 고층 아파트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주로 20~30가구의 다세대 주택을 말해요. 여기에는 사우디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거주합니다. 


공동주택 수준도 천차만별인데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 방에 여러 명씩 사는 열악한 곳도 있는가 하면, 출입문 두 개에 접대용 거실이 따로 있는 방 3~4개짜리 다세대 주택도 흔합니다. 


주재원이나 사업차 사우디에 거주하며 어느 정도 금전적 지원이 있는 외국인들의 경우 ‘컴파운드’라는 주거단지에 많이 거주합니다. 컴파운드는 우리로 따지면 아파트 단지 같은 건데요.

컴파운드.
출처:
컴파운드 단지 전경.
출처: antaraliving.com

단지 안에 빌라, 주택, 아파트 등 여러 형태의 주택이 있습니다. 수영장과 체육시설, 레스토랑, 카페, 슈퍼 등 편의 시설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좋은 곳은 단지 안에 국제학교가 있기도 합니다. 


결정적으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컴파운드 안에서는 여성이 아바야(몸 전체를 가리는 사우디 전통 복장)를 입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습니다. 편한 복장으로 자유롭게 동네를 다닐 수 있죠. 남자도 살을 드러내는 옷차림으로 외출하는 것이 조심스러운 사우디에서 복장과 이동의 자유가 있다는 건 외국인들에게 최고의 장점이에요. 


그래서 컴파운드는 기본적으로 거주비가 매우 비쌉니다. 최근 새로 생긴 컴파운드의 경우 방 3개짜리 타운하우스는 연간 렌트비용만 1억 원이 넘습니다.


‘작은 집’이 없다


사우디 청년들은 보통 서른 전에 결혼을 합니다. 대개는 결혼 후 독립을 하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가족과 함께 사는데요. 최근 몇 년 새 주택 부족이 심화됐다는 건 분가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는 얘기, 그리고 그들이 살 만한 적당한 규모의 집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요즘 사우디에서 집 구하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방 세 개짜리 주택 유형이 많이 보입니다. 가장 크고 번화한 도시인 ‘리야드’에서는 방 3개, 화장실 3개 짜리 아파트의 평균 연간 임대료가 대략 2,000만 원 선에서 시작합니다. 만약 가구가 딸린 고급 신축 아파트라면 연간 렌트 비용은 5,000~6,000만 원까지 치솟아요.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젊고 번화한 도시이자, 사우디가 관광지로 밀고 있는 ‘제다’라면 같은 조건에서도 집값은 훨씬 더 올라갑니다. 한편 앞서 이야기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복장의 자유가 있는 최신 컴파운드에는 젊은 세대의 수요에 맞춘 원룸, 투룸 아파트들도 들어섰는데요. 연간 렌트 비용만 5,000~7,500만 원에 달합니다.


집값의 15%만 있으면 내 집 마련 가능


사우디에서는 주택 가격의 15%만 있으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합니다. 나라에서 85%까지 융자를 내어주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내 수중에 7,500만 원만 있으면 5억짜리 집을 살 수 있어요. 


그렇지만 85% 대출을 갚는 게 쉬울 리 없죠. 그래서 사우디 주택부에는 주택 융자금 규모가 어마어마 하게 쌓여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돈은 갚지를 못 하는데 내어주는 돈은 늘어나는 거죠. 


집을 팔 때는 융자를 무조건 갚아야 하는데요. 그래서 ‘남은 융자금 + 내가 이사 가고자 하는 집 값’으로 주택 매도 가격을 매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네요. 만약 집을 팔지 않고 계속 살 예정이라면? 그냥 그렇게 갚지 않고 산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이지요?


외국인의 경우 회사가 보유한 주택단지에 살거나 렌트 비용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1년씩 렌트 계약을 체결해요. 사우디 임대 계약은 보통 1년 단위예요. 임대료는 월세가 아니라 한 번에 다 내거나 두 번, 많으면 세 번에 나눠 낸다고 합니다. 


사우디에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주택 수당을 따로 받습니다. 사우디 노동법에 따르면 직원에게 3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주택 수당을 지불해야 합니다. 월급 외에 주거비를 더 준다기보다는 내가 받는 총월급이 월급과 주거비로 나뉘어 있는 것에 가까워요.


한편,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들은 따로 비용을 내지 않습니다. 외국인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자취하는 대학생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집 짓기 대작전


201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가장 번화한 도시인 수도 리야드의 주택가가 점차 5층 내외 높이의 공동주택으로 변모해 가고 있어요. 사우디 정부는 2018년 주택 부족을 해결하고 국민들의 주택 소유 비중을 높이기 위해 ‘사카니(Sakani)’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2030년까지 사우디 국민(외국인 제외)의 주택 소유 비중을 70%까지 높이는 게 목표입니다. 더불어 주택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2025년 말까지 30만 가구의 주택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요. 


가족 형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택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 주에도 흥미로운 이웃나라의 거주 이야기로 만나요.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일부다처제, 다산으로 대가족의 상징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점차 핵가족화 되고 있어요.
  • 가족 형태의 변화로 주택 수요도 바뀌어, 서민주택 기준이 과거 55평에서 최근 36평으로 축소되었어요
  • 사우디 사람들은 주로 주택에 거주해 왔으며 외국인들이 다세대 주택, 아파트 등에 주로 거주해요
  • 사우디에서는 주택 구매 비용의 85%까지 대출이 가능해요
  • 사우디 노동법에 따르면 회사는 직원에게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주택 수당을 지불해야 해요
  • 2018년 사우디 정부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30년까지 주택 보유 비율을 70%까지 끌어올릴 목적으로 ‘사카니’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가족 형태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택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 주에도 흥미로운 이웃나라의 거주 이야기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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