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출처: Fred
70년대 크게 올랐던 유가는 이후 상당히 긴 기간 슬럼프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70년대 말의 수준인 배럴 당 40불로 되돌아온 것은 2003년, 2차 걸프전 때였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치솟았다가 다시 하락 후 다시금 크게 오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특히 최근 유가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걸 바로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유가가 높을 때는 인플레이션이고, 낮을 땐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줄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몇 개 구간에 번호를 부여했는데요, 그 번호를 따라가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1번이 석유파동 때입니다. 원유는요, 그 자체로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원자재인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헤지(hedge 위험 분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투자 수단이기도 합니다. 인플레이션이 높을 때에는 이를 헤지하기 위해서 원유 투자를 늘리게 되죠. 그럼 유가가 더 오르게 되고요,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이런 원리를 통해 70년대 인플레이션을 한번 살펴볼까요. 당시 인플레이션은 유가 상승이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유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기 위해 더 많은 원유를 사들이면서 더욱 강한 인플레이션으로 발전한 면도 있었던 거예요. 그랬던 인플레이션이 매파 중의 매파, 볼커의 활약으로 제압당했습니다.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굳이 인플레이션을 헤지하기 위해 원유에 투자할 필요도 없어졌겠죠? 원유에 대한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때 문제가 생긴 곳이 있으니, 바로 산유국들이었습니다. 고유가 당시 수익을 많이 낼 생각으로 생산 라인을 늘려놓았다가, 원유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을 맞이한 겁니다. 그럼 원유 감산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산유국들은 되려 원유 증산을 선택했어요. 지금 더 싼 가격에 팔면 마진은 줄어들더라도 다른 산유국보다 더 많은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산유국들의 각자도생 플레이가 펼쳐진 것이죠. 당시 1위 산유국이었던 사우디의 원유 증산은 국제유가를 크게 무너뜨리게 되는데요, 당시 상황은 그래프가 급격히 꺾이는 2번 위치에 나타나 있습니다.
국제유가는 줄곧 바닥과 천장을 오갔다고요?
이후 유가는 낮아진 상태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어요. 문제는 90년대 후반 들어 나타났습니다. 당시 동아시아 외환 위기로 인해 전 세계 제조업 경기가 크게 위축되었어요. 제조업의 위축은 원유 수요 감소의 요인이 되죠.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하락해 98년 한때 배럴 당 8불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장기 저유가로 러시아는 모라토리엄(국가나 지자체가 외부에서 빌린 돈의 상환을 유예하는 것)을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어요.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강한 흐름을 보였죠. 전 세계의 공장으로서 원자재 사재기까지 이어가자 국제유가가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고요. 2008년 5월에는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가인 배럴 당 145불까지 상승하게 됩니다. 당시 ‘인플레이션이 돌아왔다…’는 말이 나오며 투자자들이 상당히 긴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웬걸… 바로 뒤이어 찾아온 금융 위기는 다시 한번 전 세계의 수요를 바닥으로 눌러버렸습니다.
대불황의 도래는 원유 수요를 위축시켰고, 국제유가는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배럴 당 33불까지 빠졌습니다. 금융 위기의 그림자는 불과 수개월 전까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했던 투자자들을 디플레이션의 공포로 밀어 넣었더랍니다. 이때의 상황은 그래프 4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수요 견인과 원자재 상승이 만나 인플레이션이 온 거군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은 원자재 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는데요,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전 세계가 만성적인 수요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제품을 사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제조업 생산이 위축되고, 이는 다시 원유 수요를 더욱더 쪼그라들게 만들었죠.
이런 흐름을 더욱 굳힌 것이 2015~2016년 중국 경제 둔화 위기였습니다. 전 세계 원유를 빨아들이던 중국의 제조업 성장이 정체 양상을 보이면서 원유에 대한 수요가 더 줄어들었죠.
한편, 미국에서는 셰일 혁명(수압 파쇄와 수평 시추 기술의 발전으로 200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가스와 오일의 상업적 생산이 급증한 현상) 이후 원유 공급이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산유국들을 긴장하게 만들었죠. 줄어드는 수요 속에서 자신의 시장을 지키기 위해 산유국들은 다시 한번 증산으로 대응하게 되는데요, 그래프의 5번에서 보시는 것처럼 2016년 2월에 국제유가는 배럴 당 26불까지 하락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쐐기 골은 2020년 있었던 코로나 사태가 넣어줬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멈춰 서게 되자 원유의 수요가 너무나 빠르게 줄어들게 되었죠. 일정 수준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원유 생산을 이어가던 산유국들에 급작스러운 원유 수요의 감소는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국제유가는 배럴 당 10불 아래로 추락하면서 7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갔죠. 그래프에서는 6번을 보시면 됩니다. 여기까지 보신 이후엔 80년대 이후 원유 가격의 상승 발 인플레이션이라는 케이스를 찾기는 참 어렵다는 걸 눈치채셨을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 2022년 2월 24일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러시아는 세계 2~3위를 다투는 산유국이죠.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산유국임과 동시에 러시아산 원유가 유럽으로 이동할 때 거쳐 가야 하는 주요 루트 상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 전쟁으로 인해 국제유가가 다시 한번 크게 뛰게 됩니다. 단순히 원유 가격의 상승만 있었던 것이 아니죠. 코로나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진행된 엄청난 돈 풀기로 전 세계 소비 경기도 뜨겁게 달아오르게 됩니다.
네, 유가의 상승과 함께 소비 경기가 폭발한 것이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부활의 열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연재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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