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종점이 되는 돌봄시설
지난해 10월, 의미 있는 법안 하나가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올해 8월부터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 ‘임종실’을 별도로 설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거든요.
병원에 임종을 맞이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도록 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나라 사망자의 절대다수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금 더 깊게 살펴볼까요?
통계청에서 매년 발표하는 사망통계를 살펴보면,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사망자의 약 75%가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감했다고 해요. 연령대를 65세에서 84세 사이로 좁혀 보면, 이 나이대에 돌아가시는 분의 약 81%는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치는 걸로 나옵니다.
이 나이대의 사망자분들이 모두 갑작스럽게 큰 병을 앓거나, 생사에 영향을 주는 큰 사고를 당했다고 보긴 어렵겠죠. 실질적으로 이분들이 삶을 마감한 의료기관이라는 건 ‘요양병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앞선 연재에서 살펴봤듯, 명목상으론 의료기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돌봄기관인 곳에서 삶을 마치는 경우가 많아요.
악순환을 부르는 요양병원의 침대
안타깝게도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감하는 방식은 흔히 상상하는 것에 비해 충분히 존엄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들은 의식이 없거나 의식이 있더라도 면회가 극도로 제한되는 중환자실에 있는 경우가 많아, 마지막 순간 가까운 사람들과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환경이거든요.
요양병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6인 병실에서 누군가 임종을 맞이하고, 남은 가족들이 슬퍼하는 광경을 병실의 다른 환자나 보호자들이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마지막 순간의 사생활과 엄숙함이 지켜지기란 쉽지 않아요.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년층에 속하는 많은 분들이 의료기관에서 삶을 마치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침대 때문이에요.
요양병원에 있는 침대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등 대고 누울 수 있는 평범한 침대들이고, 어떤 침대는 한자리에 가만히 너무 오래 누워있으면 생기는 욕창(褥瘡)을 방지하는 기능이 추가된 것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일반 침대보다 낫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정말 문제가 되는 건, 환자들이 하루 내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지내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수술 등으로 인해 절대 안정과 회복이 필요할 때는 이런 방식이 필요하지만요. 그 기간이 너무 늘어나면, 환자에게 독이 되기 시작합니다. 근육이 사라지거든요.
근육 1kg이 400만원의 값어치를 갖는 이유
근육은 사용할수록 늘고, 사용하지 않을수록 줄어드는 정직한 신체 기관입니다. 젊을 때는 일정 부분 유지가 되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노화를 겪는 65세 이상부터는 적당량의 신체 활동량이 없을 시 우리 몸은 매년 3% 정도의 근육을 소실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돌봄기관에 입원한 후, 침대에 눕는 순간 이 모든 것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힘겹게나마 걸을 수 있던 분들도 누워 지낸 기간이 길어지면 점차 다리 근력을 상실해 나중엔 스스로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걷기가 어려워지면 활동량이 크게 줄고, 그러면 하체 외의 다른 근육도 계속 소실되어 나중엔 근육감소증이라 불리는 질병 상태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노년기 근육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복리로 빠진다’고 표현한 바 있어요. 근육 건강을 잃은 후 노년에 드는 의료비와 간병비를 계산하면, 73세 이후 약 18억 7,500만 원이 필요하는 계산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재활 치료, 바람직한 돌봄기관의 핵심 가치
그렇다면 이미 돌봄기관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분들은 어떻게 하면 근육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재활 치료’입니다.
의학에서는 신체기능이 저하된 환자를 치료하는 걸 전문으로 하는 재활의학(Rehabilitation Medicine)이란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고로 잘 걷지 못하게 되었다든지, 뇌졸중과 같은 신경계 질환으로 인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든지 하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분야예요.
재활의학을 전공한 의사 외에도 의사와 협력해 환자들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시키고, 보조하는 일을 하는 전문 인력도 따로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물리치료사와 작업치료사가 이에 해당해요.
부상에서 회복한 스포츠선수들이 복귀를 위해 재활 훈련을 하는 것처럼, 신체기능이 저하된 환자들도 재활 치료를 거쳐야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돌봄시설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방법 두 가지
살펴본 것처럼, 돌봄시설에서 걸어서 일상으로 돌아오려면 유념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미리 근육을 잘 ‘저축’해 놓는 거예요. 새로이 근육량 증가가 어려운 60대 이후가 도래하기 전에, 40대와 50대부터 근육량을 꾸준히 늘려 놔야만 하는 거죠.
그렇지만 국내 운동 시장이 극도로 양극화되어 ‘애매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이용할 서비스가 적다는 게 문제입니다. 거동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돕는 재활 치료도 있고, 운동기능이 아주 좋은 분들이 하는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크로스핏 같은 운동도 있지만, ‘젊은 시니어’가 할만한 운동은 적습니다. 장기적으로 관련 시장이 더 성숙해야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돌봄시설이 충분한 재활 운동을 제공하는 거예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요양병원 등급평가를 잘 따져보고, 최소한 1~3등급을 받은 요양병원을 찾는 게 가족 혹은 스스로의 빠른 일상 복귀에 중요해요.
심평원에서 제공하는 를 이용하면 비교적 쉽게 확인이 가능해요. 지역과 여건에 따라 선택지가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안에서도 막연한 소문이나 인터넷 검색에 의존하지 않고 조금 더 객관적인 자료를 볼 수 있는 방법이에요.
모두가 원하는 좋은 돌봄시설이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됩니다. 다음 연재에서 ‘돌봄 재정’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 나눠볼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