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사이트 주소;피망 포커 티켓 | 바카라 온라인 게임 //xiandahuizhanzhongxin.com/category/cloumn/어피티-오리지널/라떼극장/ MZ 세대의 돈 이야기, 37만 명이 선택한 경제 미디어 Sat, 02 Nov 2024 23:12:01 +0000 ko-KR hourly 1 //xiandahuizhanzhongxin.com/wp-content/uploads/2023/07/[email protected] 2024년 안전 토토사이트 | 순위, 사설 토토 사이트 추천 TOP15 //xiandahuizhanzhongxin.com/category/cloumn/어피티-오리지널/라떼극장/ 32 32 230466507 [ 필리핀 카지노 라이선스 ] 회원사 | 필리핀 온라인 게임 //xiandahuizhanzhongxin.com/%ec%96%b8%ec%a0%9c%eb%b6%80%ed%84%b0-%ea%b9%80%ec%b9%98%eb%a5%bc-%ec%82%ac-%eb%a8%b9%ec%97%88%ec%9d%84%ea%b9%8c/ //xiandahuizhanzhongxin.com/%ec%96%b8%ec%a0%9c%eb%b6%80%ed%84%b0-%ea%b9%80%ec%b9%98%eb%a5%bc-%ec%82%ac-%eb%a8%b9%ec%97%88%ec%9d%84%ea%b9%8c/#respond Thu, 31 Oct 2024 23:09:13 +0000 //xiandahuizhanzhongxin.com/?p=24111 The post 언제부터 김치를 사 먹었을까? appeared first on UPPITY 어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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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인

바야흐로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어요. 김장철이란 24절기에서 입동(立冬) 전후를 뜻해요. 대체로 11월 7~8일 경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일이죠. 우리나라에서 김장은 예로부터 굉장히 중요한 겨울 행사였어요.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에도 왕실에서 매년 대대적으로 김장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랍니다. 


하지만 이제는 김치 소비량이 줄며 과거에 비해 김장을 잘 하지 않는 집들도 많아졌어요. 실제로 김치 소비량은 1970년대 1인당 하루에 250g에서 지난해 87g까지, 50년 만에 삼분의 일로 줄어들었죠.


옛날 사람: 겨우내 먹을 양식을 입동에 다 마련해야 하거늘, 요즘 사람들은 김장도 제때 안 하고 말이야. 떼잉. 😡

어피티: 요새는 파는 김치도 잘 나와요. 어르신. 😊

옛날 사람: 집집마다 김치에서 어떤 맛이 나느냐! 그게 아주 중요한 문제란 말이야.

어피티: 그렇지만 김치 시장은 더욱 커졌는걸요. 김치로 돈 버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 아닐까요? 🤗

옛날 사람: 라떼는~ ‘김치 시장’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어!


과거 김장이 얼마나 중요한 행사였냐면, 좋은 회사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11월에 김장 보너스를 주는지 여부였어요. 김장 보너스는 월급의 최소 30%에서 많게는 100%까지 지급됐죠. 학교에서도 집안 김장을 도우라며 김장철이면 며칠간 ‘김장 방학’을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김장이 언제부터, 왜 공장에서 만든 김치를 사는 것으로 대체되었을까요?


일자리가 있는 도시에는

마당 있는 집이 없어요


1960년대 후반, 우리나라 경제는 고도로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농어촌에서 도시로 몰려들었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며 주거의 질은 그만큼 낮아졌어요. 도시로 막 올라온 사람들은 좁은 단칸방으로, 원래부터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대규모 인구를 수용하는 데 적합한 아파트로 서서히 옮겨 갔는데, 모두 김장에는 알맞지 않은 장소입니다.


김치가 정말 중요한 반찬이던 시절에는 평균 배추 50포기와 무 수십 개로 김치를 담갔어요. 그런데 김장용 통배추는 한 포기에 2~3kg 정도 합니다. 50포기만 한다고 해도 벌써 100~150kg이에요. 게다가 김장은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그만한 배추를 다 절이기 위해 필요한 소금의 무게와 양도 만만치 않겠죠. 여기에 고춧가루와 마늘 같은 기타 부재료까지 생각하면 엄청난 무게와 부피예요.


어피티: 그 당시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도 없었는데, 그걸 다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상상을 하니까 정말 쉽지 않았겠는데요… 🙄

옛날 사람: 힘들긴 했어…


시골이라면 마당에 배추며 무를 잔뜩 쌓아놓을 수 있어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이 다 함께 몰려들어서 일손을 나눌 수 있죠. 하지만 도시에는 재료를 보관할 곳도 없을 뿐더러,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공간도 없어요. 


양을 줄여서라도 어떻게든 김장을 해보지만 이번에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생깁니다. 11월이면 김장비닐, 고무장갑 같은 ‘김장폐기물’이 10톤 가까이 쏟아져 도시의 위생과 청결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렇다 보니 1969년 서울시는 ‘서울 근교에 김장 공장을 만들어, 주부의 일손을 덜어주고 도시를 깨끗하게 만들겠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해요.


옛날 사람: 맞아 그랬지… 영세 기업들이 그냥 넓은 곳에 장소를 마련해서 직원들을 고용해 김치를 담그면서 공장 김치 생산이 시작됐지.


10여 년 만에

백 배 늘어난 김치 공장 수

 

1977년 기사를 보면 서울 시내에 기업화된 김치 공장이 여섯 군데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요. 이 적은 수의 공장들이 7만2천 톤, 약 150억 원어치의 김치를 공급했죠. 그런데 8년 후인 1984년에는 기업화된 김치 공장이 전국적으로 500여 군데로 늘어납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열렸는데 이 국제적인 행사들이 김치 세계화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규모의 행사를 맞아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은 한국식품을 세계인의 기억에 남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죠. 라면은 물론 불고기와 비빔밥, 그리고 당연히 김치도 포함됐어요. 특히 정부는 김치 상품화 정책까지 실행했는데, 바로 이때 최초의 포장 김치 브랜드 .


작전은 성공적이었어요. 이후 김치의 해외 수출은 크게 늘어납니다. 시장성이 확인됐으니 이제 대기업이 등장할 타이밍이었죠. 두산이며 현대, 미원까지 발 벗고 나서 김치 상품화에 눈독을 들입니다. 그러자 농협은 물론 중소기업들이 크게 반발했고, 김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게 돼요. 물론 대기업 계열사들이 시장에 참여하긴 했지만, 해당 규제가 완전히 풀린 것은 2012년입니다.


김칫독 대신 김치냉장고를 들이다


1990년대가 되자 대기업 계열사들이 생산한 상품 김치가 시장에 활발히 등장합니다. 깔끔하고 편리하게 포장된 상품 김치를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김치를 사 먹게 됐어요. 이에 따라 김장하는 배추 포기 수가 줄어들었죠. 김장 문제가 해소되자 이번엔 김치를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 커졌습니다.

 

옛날 사람: 도시에서는 김칫독을 묻을 데가 없으니까 말이야.

어피티: 예전에는 김치 항아리를 땅에 묻었었어요?

옛날 사람: 냉장고가 없을 때는 땅 밑이 온도 변화가 가장 적었단다.

어피티: 그럼 아파트에선 김치 보관을 어떻게 했어요?

옛날 사람: 각종 방법을 다 동원했지. 그러다가 김치냉장고가 등장한 거야.

 

김치독을 묻을 마당이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김치를 시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무척 애를 썼어요. 아이스박스에 넣어둔다든가, 플라스틱으로 김장독을 만든다든가, 스테인리스로 된 김치통에 신문지를 몇 겹으로 싼다든가하는 방법이 동원되었고, 이 모든 보관물은 꼭 북쪽 베란다 햇빛이 안 드는 구석에 보관하거나 지하실에 두어야 한다는 사설이 매해 신문에 실렸어요.

 

최초로 히트를 친 김치냉장고는 1995년 위니아에서 개발한 ‘딤채’입니다. 그전에도 김치 보관용 냉장고가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1984년 금성(LG)과 1993년 삼성이 김칫독냉장고니 하는 김치 보관용 냉장고를 만들어 내놓았거든요. 하지만 어디까지나 김치통이 딸려 있고 보관공간만 좀 넓을 뿐이라 섬세한 온도 조절 같은 건 불가능했죠. 소비자는 그런 김치 보관용 냉장고를 외면했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김치냉장고를 낯설어 했어요. 기능도 믿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했으니까요. 하지만 사용해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냈고, 1997년쯤 되자 외환위기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김치냉장고가 하루에 1천 대씩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정작 위니아는 작년 2023년 임금체불사태까지 일으키며  여러 대기업이 그 사이 김치냉장고 개발에 뛰어든 덕에 김치냉장고 시장 규모는 이제 1조7천억 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피티: 1조7천억 원짜리 시장을 만든 입소문이라니, 초기 사용자들은 김치냉장고의 어떤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해요?

옛날 사람: 일반 냉장고에 더 이상 김치 냄새 안 배는 부분. 😊

어피티: 아… 🙄

 

성장하는 김치 시장

적자 나는 김치 무역? 

 

2023년 기준, 상품 김치 시장 규모는 2조 원에 가깝게 성장했어요. 김치냉장고처럼 김치와 관련된 직·간접적 시장 규모를 다 합치면 수조 원에 달할 거예요. 김치 소비량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지만 김치 시장이 성장하는 이유는,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던 사람들이 점점 더 상품 김치를 구매해 먹기 때문이에요. 특히 ‘호텔김치’ 등 고가의 프리미엄 포장김치의 인기가 늘어나, 2021년 5370억 원이었던 시장 규모가 2023년에는 6560억 원으로 .

 

이렇게 프리미엄 시장이 커지고, K푸드의 인기에 따라 해외의 김치 소비도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김치 무역수지는 적자입니다. 수출하는 김치보다 수입하는 김치가 더 많다는 건데요, 김치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단체급식과 식당에서 대부분 저가 중국산 김치를 사용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누구나 국산 김치를 선호하지만 중국산 김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거죠. 

 

국내에서도 가격경쟁력이 있는 김치를 생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원재료 가격 차이가 워낙 크게 나서 힘들다고 합니다. 이상기후가 심각해지며 사정은 더욱 나빠지고 있어요. 

 

상품이 시장에 나와 인기를 얻으면 여러 나라에서 생산하며 경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시장논리에 맡기기만은 싫은 순간이 있기 마련이에요. 옛날 사람 님 말씀처럼 집집마다 다른 김장 김치가 익어 가는 시대가 다시 오기는 어렵겠지만, 모두가 기억하는 김치맛이 중국산 저가 김치맛 하나로 통일되는 날 또한 오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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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2032년에 개최될 제35회 하계 올림픽 유치를 두고 국내 도시 간 경쟁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올림픽 개최 도시를 한 곳으로 결정해 신청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후보지로는 서울과 부산이 경쟁하다가 결국 이후 제35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는 호주 되었어요. 


그래도 우리나라 도시가 개최전에 뛰어들었는데, 2002년 월드컵 개최도시 선정전이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선정전 때와 달리 큰 화제가 되지는 않았어요. 이유가 뭘까요?


어피티: 최종 선정이 안 돼서 그랬을까요? 🙄

옛날 사람: 88 서울올림픽이랑 2002 월드컵은 후보지 참가 때부터 난리였다고!

어피티: 그땐 사람들이 지금보다 스포츠를 더 좋아했나요?

옛날 사람: 그런 게 아니야! 라떼는 말이야! 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고 나서 ‘이야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구나! 잘 사는구나!’ 하며 다 같이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오늘은 2024 파리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제행사 유치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얘기해 드릴 거거든요!


올림픽 개최지, 왜 중요할까?

 

올림픽 개최 도시 선정은 전 세계적인 관심사입니다. 올림픽뿐만이 아닙니다. 월드컵, 세계박람회 등 다양한 국제행사 개최를 두고 여러 나라가 경합을 벌이는 것은 오랜 세월 익숙한 풍경이죠. 대체 왜 다들 그렇게 국제행사를 개최하려고 애를 쓰는 걸까요?


옛날 사람: 사람이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자랑이고, 그다음이 노는 거 아니겠어? 고대 그리스에서 그런 식으로 함께 모여 놀던 문화가 . 그게 여태 이어진 거야.

어피티: 그니까 올림픽은 다 같이 모여서 놀기 위해 시작된 거군요?

옛날 사람: 순진하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자랑이라니까. 올림픽에서 자랑을 빼먹으면 어떡해!

 

‘올림픽 개최’는 국가를 홍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종목별 순위도 순위지만, 다른 것들도 중요해요. 대표단의 의상부터 경기장 시설, 도시의 청결 상태, 문화 행사,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서비스 수준까지, 모든 것을 신경 써서 준비합니다.

 

이 자랑잔치의 주인공은 단연 개최국입니다. 도로와 경기장, 사람들의 복장, 길거리 먹거리 등 거의 모든 것이 전 세계에 중계되니까요.


전 세계에 한국을 광고하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가 쭉쭉 발전하던 시기였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전 세계에 우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죠. 

 

전쟁으로 와 로 대변되던 나라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잘 정돈되고 발전한 도시를 자랑한다? 한 번에 대한민국에겐 이미지를 개선할 기회였습니다. 북한과의 평화 무드가 잘 자리 잡았다는 것도 어필할 수 있었어요.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미국이랑 소련이 갈등을 겪으면서 1980년 이후로는 한쪽이 올림픽에 불참하곤 했거든요. 미국에서 열면 소련 쪽 국가들이 안 나오고, 소련에서 열면 미국 쪽 국가들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 때 미국과 소련이 하면서 반쪽짜리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는 미국 편에 있으면서, 북한과의 분단 문제가 엮인 특수한 상황이었죠. 당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선언하며 이전에 우리나라가 공산진영 국가를 대하던 적대적 태도를 크게 완화합니다. 각자 한 번씩 보이콧했겠다, 조그만 분단국가가 평화를 외치며 개최국으로 나섰겠다, 미국 쪽 국가와 소련 쪽 국가 양쪽에 참석할 명분이 충분했습니다. 각자 얼마나 더 잘났는지 자랑할 무대도 필요했고요. 

 

그래서 1988년 서울 올림픽에는 모두가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88 서울올림픽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온전한 형태를 갖추어 열렸고, 전 세계에 한국이라는 신흥국이 확 떠오르게 돼요.

 

그렇게 돼서 우리나라에 경제적으로 좋은 게 뭐냐고요? 기업이 광고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물건을 살 때 광고에서 한 번이라도 봤던 물건에 눈길이 더 가잖아요. 광고에서 강조하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기도 하고요. 브라운관을 통해 빠르게 발전한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난 뒤, 한국의 이미지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물론 좋은 쪽으로요.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간 거예요.


이럴 때, 국제행사는 

나라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수 있다

국제행사의 경제적 효과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경기장을 짓고, 도로를 닦고, 숙소를 짓기 위해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생산 유발 효과

② 한 국가가 국제적으로 방송에 노출되면서 발생하는 홍보 효과 및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국민 간 연대감이 생기는 등의 부가가치 발생 효과

③ 행사 중에 필요한 통역요원, 보안요원, 행사진행요원, 경기장 근처 호텔이 채용하는 인력까지 포함하는 고용 유발 효과

 

국제행사를 계기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경제적 효과죠. 그 효과는 개발도상국에 가까울수록 크기 마련입니다. 이미 잘 갖춰져 있는 도로를 고쳐 쓰면 되는 나라와 이 기회에 도로를 싹 다 닦아야 하는 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나라와 일용직 일자리도 부족한 나라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니까요.


국가 리모델링의 기회 


국제사회에서 장사할 때 국가의 이미지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국제행사를 앞두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온 나라를 뒤엎는 것도 바로 이 이미지 때문이죠. 2002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나라는 나라의 ‘현관’인 을 새로 짓고, 전국의 휴게소 화장실을 뜯어 고쳤어요.


어피티: 공항은 그렇다 치고, 휴게소 화장실까지 손봤다고요?

도로공사: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구석구석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찾아왔거든요! 정도? 그 사람들한테 더러운 화장실을 사용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어피티: 그래서 그때 화장실을 싹 다…

도로공사: 🤗


이렇게 긍정적인 변화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도 종종 벌어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위해 중국 정부가 베이징에 있는 한 사건이에요. 인권 측면에서 국제사회의 큰 이슈였어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1988년 올림픽 준비를 위해 도, 도 밀었어요. 평소라면 더 오래 걸리고, 비용도 훨씬 많이 들었을 각종 개발사업을 국제행사 개최를 명분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측면이 1988년의 한국과 2008년의 중국처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경계에 있는 나라가 국제행사 개최에 목을 매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나라의 자원을 평소보다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집중시켜,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거든요. 도시와 교통 인프라에 큰 변화를 가져올 기회가 돼요.


잘 사는 국가도 근황 공유는 필수


그러면 소위 먹고살만 한 나라들은 각종 국제행사 개최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왜 한국이나 일본처럼 살 만큼 사는 나라들도 자꾸만 개최국 경쟁에 뛰어들까요? 크게 세 가지로 이유를 나누어보면 이렇습니다. 


①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 👉 요새 하도 한물갔다는 이미지가 생겨서, 최신 근황으로 자랑할 때가 됨

② 우리 괜찮아. 아무도 안 싸운다니까? 👉 대외적으로 우리 나라가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함

③ 우리 잘될 거야! 신나게 놀고 스트레스 풀자 👉 국민들의 화합이 필요함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에 도쿄 올림픽을 준비 중이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2011년 대지진 이후 큰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이젠 잘 회복한 상태라는 걸 알리고 싶었을 거예요. 


이미 개최지가 호주 브리즈번으로 결정나긴 했지만, 2032년 하계 올림픽 유치 후보 도시로 입후보한 서울은 서울-평양 공동개최를 내세웠죠. 아직도 국제사회에 남북한의 냉전 상황은 큰 불안거리로 남아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평화 무드를 확인시켜 줘야 하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시도였어요. 정치적 불안은을 미치고, 장기적으로 국가 경제에 손해를 끼칠 수 있거든요. 


적자가 심해도 너무 심해


그렇지만 올림픽이나 월드컵, 엑스포 같은 커다란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1990년대 이후로는 해졌어요. 원인은 간단합니다. 적자 때문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올림픽마다 몇 억 달러, 몇 조 원의 적자가 났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죠. 여전히 간접적으로 경제적인 효과가 유효하다고 하더라도, 당장 큰 적자가 나면서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에 선뜻 투자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19 때문에 2021년 7월로 연기된 도쿄 올림픽은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입은 국제행사의 대표적 사례가 되어버렸어요. (당시 환율로 약 13조5000억 원)이나 되는 목돈을 들여 경기장이며 다른 인프라며 고쳐 놨더니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거잖아요? 돈만 쓰고, 부가가치 효과는 전혀 누릴 수 없게 된 거예요. 


2023년 8월, 우리나라 새만금에서 열렸던 세계스카우트잼버리도 마찬가지예요. 간척지인 새만금 개발에 국민들의 동의와 참여를 유도하려 신나게 추진했지만 결국 행사 진행 과정이 좋지 못했고, 잼버리를 위해 지어둔 도 마땅한 활용 방안을 확정하지 못한 채 덩그러니 남아버렸습니다.


2024 파리올림픽 개회를
기다리며 

 

이번 달 26일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제33회 올림픽이 열려요. BTS의 멤버 ‘진’이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설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죠. 아무리 요즘 올림픽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투덜거려도, 결국 선수들이 경기장에 등장하면 중계를 보며 환호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올림픽 정신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예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나고, 기후위기 해결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로 다가온 2024년입니다. 파리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기를 바라요. 

📚 뉴스에 참고한 자료

  • 정희준 (2008). 스포츠메가이벤트와 경제효과: 그 진실과 허구의 재구성.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1(1), 229-251
  • 박보현 (2008). 스포츠 메가 이벤트의 경제발전 담론.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21(4), 78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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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근 들어 SK그룹이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우선 SK하이닉스가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개발해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한다는 뉴스가 있었죠. 이 소식에 SK하이닉스 주가는 주당 20만 원을 넘기며 2000년 이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좀 더 눈길이 가는 뉴스는 따로 있습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노소영 관장에게 이 나온 거예요. 


이 정도 규모의 현금을 내놓으려면 최태원 회장은 보유 지분을 상당 부분 매각하거나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해요. 역사상 유례없는 거액의 위자료와 재산 분할, 아무리 재벌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판결이 가능했을까요?

화려한 무늬가 매력적인 봉황새 이불감, 출처


옛날 사람: SK가 혹시… ‘봉황새 이불감’ 팔다가 ‘스마트 학생복’ 만들던 회사 말하는 건가? 그… 선경그룹…

어피티: SK그룹은 석유화학이랑 반도체 하는 회사인데요…? 반도체 대장주 SK하이닉스 모르세요?! 🤨

옛날 사람: 하이닉스인지 뭔지 하는 그거, 원래 LG반도체였어! 가만, 그 다음엔 현대전자였나? 다 기억났어! 맞아! 그게 다 노태우 딸이랑 결혼한 덕분에~ 

어피티: 하하하, 잠깐 저희끼리 따로 얘기할까요?


LG가 반도체에 진심이던 시절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LG그룹을 대표하는 사업은 전자, 화학, 그리고 금융이었어요. 사명을 LG로 바꾼 것이 1995년이니 그 이전에는 ‘럭키금성’이라고 불렀죠. 럭키금성의 히트상품은 ‘럭키치약’과 ‘금성라디오’, ‘금성냉장고’, ‘금성테레비’, 그리고 ‘금성투자금융’이 있었죠. 오래가고 튼실한 가전으로 유명한 LG가 금융업이라니 조금 낯설죠?


격동의 1980년대를 되돌아보자면 이렇습니다. 금성투자금융은 카드와 보험사업으로 뻗어나갔어요. 외환위기 직전까지 LG의 금융업은 참 잘나갔습니다. 현재 신한카드가 된 LG카드는 한때 카드 업계 1위를 다툴 정도였어요.


LG투자금융에 비하면 LG반도체는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지죠? 현재도 화학과 전기전자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 과거에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로 삼은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순이니까요. 


럭키금성 시절, LG는 금성일렉트론이라는 반도체회사를 세웠습니다. 영국에 반도체 공장을 갖고 있었죠. 이게 다 무슨 소리냐고요? 이 모든 건 SK하이닉스의 초창기 모습을 이야기하기 위한 초석입니다.

 

1997년 연말이 저물어갈 즈음, 우리나라는 심각한 달러 부족 사태를 겪게 됩니다. 달러가 부족하면 외국에 진 빚을 갚을 수 없고, 석유처럼 중요한 에너지도 사 올 수 없어요. 그 유명한 IMF 외환위기의 시작이었죠.


외환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기업 간 구조조정에 나섭니다. 그중에는 ‘빅딜’도 있었어요. 기업집단을 산업과 사업별로 해체해 레고 조립하듯 재조립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LG반도체도 빅딜의 대상이었습니다. 


LG반도체가 현대전자 되고 

현대전자가 SK하이닉스 된 사연


옛날 사람: 빅딜 때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갔어. 당시 LG를 맡고 있던 구자경 회장은 마지막까지 버텼지. 하지만 정부는 LG그룹에 모든 대출을 끊어버리며 압박했어. 결국 반도체는 현대로 넘어가고 말았지.

어피티: 그런데 왜 그 반도체 사업이 지금 현대에 없고 SK에 있는데요?

옛날 사람: 현대가 반도체 사업을 2년 만에 접었거든! 


1999년 LG반도체를 가져온 현대전자는 2001년에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꿉니다. (며칠 전 삼성전자의 반도체 총책임자가 된 전영현 부문장이 바로 LG반도체 출신으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바뀔 때 삼성전자로 이직했다고 해요) 


반도체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에요. 외환위기는 현대그룹도 똑같이 겪었습니다. 자금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였죠. 결국 반도체 사업을 유지할 만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고, 설상가상 반도체 경기까지 불황 사이클에 들어섰어요. 


같은 해, 하이닉스 반도체는 공정거래법상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채 처치 곤란한 빚덩어리로 10년을 보내게 돼요. 그리고 2012년,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합니다.


SK의 하이닉스 인수 능력과 

이혼 위자료 사이의 관계


옛날 사람: SK가 하이닉스를 인수할 돈이 어디에서 났을까?

어피티: 사업을… 잘해서?


이번 판결문에 힌트가 있습니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에는 SK그룹의 보호막이나 방패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며 SK그룹 경영에 노 관장의 기여분이 있다고 본 것이다. … 노 관장 측은 2심 과정에서 1990년대에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약 343억 원이 최종현 전 회장과 최 회장에게 전달됐으며,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2022년,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우리나라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선 SK그룹의 시초는 1953년 최종건 창업주가 경기도 수원시에 설립했던 일본기업을 불하받은 ‘선경직물’이에요. 


*불하하다: 국가 또는 공공단체의 재산을 개인에게 파는 걸 말해요


선경직물은 1960년대 일본 화학섬유기업들과 합작하며 화학섬유를 생산했어요. 그때까지는 재계 서열에 끼지 못하던 회사였는데, 1980년에 석유공사를 인수하고 에너지와 정보통신회사로 주력사업을 바꾸면서 재계 서열 5~6위권으로 올라왔어요. SKC 공테이프와 플로피디스크는 선경그룹의 히트작이었죠.


그러던 1989년, 선경그룹의 후계자였던 최태원과 신군부의 실세였던 노태우의 장녀 노소영이 결혼을 발표합니다. 


통신업에도 뛰어들어볼까?


옛날 사람: 그때 선경그룹 입장에서는 딱 한 끗 차이였어. 내가 생각해도 조금만 더 하면 치고 올라가서 삼성이며 현대며 이런 재벌그룹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거였다고. 

어피티: ‘조금만 더 한다’는 게?

옛날 사람: 테이프며 플로피디스크에 붙어 있던 SKC 메이커는, 선경커뮤니케이션 준말이거든? 커뮤니케이션 기업으로서 정점이 뭐겠어. 바로 이동통신이야.

어피티: 어라? SKT?


1990년대에 들어서며 우리나라는 IT산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한국통신’ 하나뿐이었던 이동통신사를 늘리기로 합니다. 이때 선경그룹은 ‘선경텔레콤(지금의 SKT)’을 새로 세우며 제2이동통신사를 선정하는 프로젝트에 뛰어들었고, 사업권을 곧바로 따냅니다. 


비자금 의혹,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판결


문제는 사업자 선정 뒷배경에 ‘사돈댁’인 노태우 대통령의 입김이 의심받았다는 거예요.

6공 최대 이권으로 불리던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부문 사업자로 노태우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선경이 선정됨에 따라 ‘특혜 의혹’과 ‘사전 내정설’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됐으며, 정치권과 재계는 특혜 시비에 휘말릴 전망이다. (1992.08.21. 한겨레)


여론이 너무 좋지 않아, 선경그룹은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자진 반납합니다. 하지만 2년 후인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다시 통신업을 시작했어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할 수 있었던 돈이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정경유착 등을 통한 거액의 비자금 착복이 밝혀져 감옥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세부 내역이 다 밝혀지지는 않아, 정말 선경그룹에 인수 자금을 주었는지 여부는 누구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 이혼 재판에서 재판부가 불법 자금의 존재를 을 내렸습니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이지만요.


재산분할 1조 3,800억 원
갑자기 툭 튀어나온 건 아니라네


한국이동통신 인수 이후, 선경그룹은 ‘가장 잘하는 사업은 다름 아닌 인수합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닥치는 대로 관련 기업을 인수하기 시작해요. 싸이월드, 라이코스코리아, 신세기통신, 하나로텔레콤 같은 통신기업과 다른 정유기업들을 인수해요. 


1998년에는 SK로 사명을 바꾸며 우리나라 4대 재벌로 등극합니다. 하이닉스 인수도 SK 특유의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이 낳은 성공 사례였다고 볼 수 있어요. 


SK의 주요 사업인 통신과 석유는 다른 산업과는 성격이 조금 달라요. 둘 다 국가의 기간산업이고, 장사를 특별히 잘해서 큰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필수재에 가까워서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정적으로 일정 수준의 수익이 보장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SK를 국내 최고의 통신기업으로 만든 한 걸음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시작됐다면, 하이닉스 인수에도 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하이닉스 인수뿐 아니라 경영 전반에 많은 힘이 되었겠죠. 이게 바로 이혼 소송에 재산분할 1조 3,800억 원이 등장한 배경이에요.

필진의 코멘트
  • 정인: 2심 판단이 나오며 SK 주가는 했는데, 경영권을 뺏고 빼앗기는 과정에서는 경영권을 지키려고 가격 상관없이 주식을 서로 사들이며 주가가 오를 수 있다는 기대를 샀기 때문이에요. 위자료를 마련하려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팔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면 증시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칠 거예요. 감옥까지 다녀온 전 대통령이 과거에 벌인 일이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이런 풍경은, 우리나라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선진국에 비해 취약하다는 지적이 사실로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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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근 몇 년간,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우리나라 의료계 지형에 변동이 일고 있어요. 필수의료 공백과 지방의료 붕괴가 핵심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정부는 을 추진했어요. 하지만 전공의·의대생이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면서 추진안은 실패했습니다. 


당시 전공의와 의대생이 파업하자 대체인력이 된 간호사가 주목받으며, 전공의 업무를 일부 수행할 수 있는 의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PA는 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전공의(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 위하여 수련을 받는 인턴 및 레지던트)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수 있는 간호사입니다. 미국에서 특히 활성화돼 있고, 한국에서도 계속 발전하고 있어요. 현재 한국에서도 PA간호사는 전공의와 함께 교육을 받을 정도로 되어 있습니다. 직접 의료업무를 보는 건 현재 이이에요. ‘(2024년 3월 기준)’

그러나 관련 내용이 들어 있던 간호법은 2023년 지난해, 국회 통과 후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며 폐기됐어요. 하지만 올해 정부가 다시금 의대 정원 2,000명 증가를 추진하며 됐고, 정부는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간호사가 지금처럼 뉴스를 장식하던 시절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도 의료보다 경제와 관련해서 말이에요.

🎬 Scene #1.
‘조국 근대화의 산업 역군’
파독 간호사

옛날 간호사: 라떼는, 그니까 1966년~1976년까지 1만 간호사 부대가 나라 경제를 일으켰거든. 독일에 파견 나간 간호사와 광부가 한국으로 보낸 외화가 를 차지할 정도였다고.

the 독자: 파독 간호사 얘기는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것 같아요. 이분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옛날 간호사: 당시에 독일에서 전문인력으로 일하다가 지금은 은퇴하고 쉬고 있지.


혹시 ‘파독 간호사’를 아시나요? 우리나라가 아주 어려웠던 시절, 간호유학생으로서, 또 해외인력 수출정책에 따른 이주노동자로서 독일(서독)로 파견을 나간 간호사들입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최근에 간호사의 역할 범주를 둘러싼 이슈는 물론, 이주노동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맥락과 근현대 한국 경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시절, 여성에게
허용됐던 전문직


간호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대표적인 여성 직업이었습니다. 여성이 직업은 커녕 글자 배우는 것도 쉽지 않던 시절. 간호사만은 여성의 전문적인 직업 영역이었죠.


🎬 Scene #2.

1908년, ‘한국 간호사’의 시작


옛날 간호사: 옛날에는 간호학교에 여성들만 입학을 허락해 줬다니까. 최초의 졸업생이 1908년에 나왔는데, 이후로 아주 인기가 많았어.

어피티: 자료를 보니,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인 1940년대 중반 조선에는 간호사가 총 2,254명이었는데, 그중 조선인이 1,017명이나 되더라고요.

옛날 간호사: 면허 없이 기술 익혀서 간호사로 일한 여성들은 세 배, 네 배는 됐을걸. 일본 식민정부에서 간호사만큼은 조선 여성한테도 교육과 취직을 허락했으니.

the 독자: 지금도 전문 의료인이 되기가 힘든데, 힘든 시절에 열정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아요.

옛날 간호사: 그땐 말이지, 간호사를 포함해서 2년 이상 의료보건업을 하면 의사 면허를 줬어. 

the 독자: 그랬군요, 신기하네요.


📚 이꽃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간호제도에 관한 보건사적 연구』,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9, 240쪽.

📚 Mary Cutler, “Po Ku Nyo Koan” 1907, pp. 13-28

나라도 살리고

나도 출세하고


보통 언론이나 교재에서 파독 간호사에 대해 묘사할 때는 ‘동양인 여성 이주노동자로서 겪은 차별이나 서러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화벌이를 위해 우리 누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팔아버린, 가난해서 슬픈 역사’라는 식의 보도가 많이 됐어요.


🎬 Scene #3.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


어피티: 그 내용들이 모두 사실인가요?

옛날 간호사: 절반 정도만? 간호사가 정식으로 파견된 게 1966년부터인데, 당시 못 사는 나라였던 한국에서 어떻게 선진국인 독일로 간호사를 정식 파견할 수 있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겠지.

the 독자: 듣고 보니 그렇네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요?

옛날 간호사: 1950년대부터 이미 한국 여성들이 간호사로 많이 가 있었거든. 이미 많이들 와서 자리를 잡고 있으니 나중엔 아예 정부 차원에서 공식 제안이 된 거야.

the 독자: 1950년대부터요? 왜요?

옛날 간호사: 여성들이 말이야, 뭐라도 배워서 존경도 받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데 한국에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거든. 열정 있고, 정보력 있는 여성들은 교회나 선교단체를 통해 독일로 유학을 가서 배우고 일하고 그랬지. 돈을 못 받더라도 간호학생 신분으로 일한거야.

the 독자: 돈을 안 받고 일했다고요?

옛날 간호사: 기숙사에서 재워 주고, 밥 주고, 의료기술도 가르쳐 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다 했지 그때는. 그래도 일단 자격 따서 독일에서 정식으로 취직하면 한국에서 받던 월급의 최소 열 배는 받았으니까. 3년 일하면 한국에 집 한 채 살 수 있는 돈이었어.

the 독자: 그래서 50년대부터 독일에 많이 갔던 거군요.

옛날 간호사: 그렇게 번 돈을 한국으로 착실하게 송금했지, 모두들. 정식 파견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부터는 학생 신분이 아닌 정식 간호사들이 독일로 왔어.


1950년대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 한국은 정말로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다들 잘살고 싶어 해서, 어떻게든 자식들을 가르치려 했죠. 경제규모는 작아서 일자리는 부족한 와중에 많이 배운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학력 실업자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동시에 경제 개발을 위한 자본도 부족해서 외국에서 달러 빚(차관)을 빌려와서 충당했습니다. 원금도 이자도 모두 달러로 내야 하니까 외화도 부족했죠.


그러니까 독일로의 간호사 파견은 세 가지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는 일이었어요.


  • 여성들의 학구열과 사회 생활 열망 충족
  • 나라 전체적으로 높았던 실업률을 해외 취업으로 해결
  • 파독 간호사들이 한국으로 달러를 부치면 외화 부족 완화


📚 나혜심 「파독 한인여성 이주노동자의 역사(2007)」, 한국학술진흥재단

왜 독일이었을까? 


그런데, 왜 독일에서 유독 한국의 간호인력을 필요로 했을까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독일은 당시 역사적·문화적인 이유로 간호사의 의료 행위를 하녀의 섬김 활동이나 종교적 봉사 활동처럼 여기곤 했습니다. 


1960년대에 독일은 최고로 잘나가는 나라였거든요. 경제성장도 빠르고, 다른 일자리도 많았어요. 간호사는 월급은 낮고 일도 힘든데다 사회적 인식도 낮으니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 Scene #4.

각성해버린 독일


어피티: 그래서 ‘못사는 나라’인 한국에서 노동 인력을 수입한 거군요. 

옛날 독일 사람: 그것도 그렇고, 당시 한국 간호사의 의료전문성 수준이 독일 간호사의 수준보다 훨씬 높았거든. 한국 간호사들은 로 교육을 받았는데 독일 간호사들은 좋은 교육을 못 받았어.

the 독자: 그럼 계속 한국 사람을 간호사로 부르지, 왜 1970년대 후반에 인력 수입을 그만뒀대요?

옛날 독일 사람: 1960년대 즈음 독일 경제가 자리를 잡고 복지체계도 정비됐어.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장수하는 노인들이 갑자기 늘었거든. 병원에 자주 다녀야 하다 보니 간호인력 필요가 늘어났지. 그 간극을 한국인 간호사들이 채운 거야. 그때 우리가 깨달은 게 있어.

the 독자: 뭘요?

옛날 독일 사람: 간호사라는 직업이 아주 중요한 전문직이라는 걸 말이야.


1970년대 후반부터는 독일 간호사의 월급도 아주 많이 올랐고, 처우도 좋아지고 체계도 개선돼서 독일 사람들이 간호사를 하고 싶어 했어요. ‘값싼 외국인 노동자’가 필요 없어진 거죠.


그리고 지금,
한국의 이야기


현재 우리나라는 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임상 활동 간호사는 인구 1,000명당 5.02명으로, OECD 평균인 8명의 절반을 살짝 넘는 수준이에요. 인력 부족의 원인은 1960년대 독일과 어느 정도 비슷하지만, 우리는 과거 독일처럼 이주노동이라는 해결책을 사용할 수 없답니다. 한국에서 보건의료 직종에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한국의 의사와 간호사는 한국 의대와 한국 간호대를 나와 한국의 국가자격시험을 봐야 면허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외국의 의사나 간호사 면허를 인정해 주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간호사 수요는 계속 늘어납니다. 사람들은 65세 이후 평생 쓰는 의료비의 절반을 지출합니다. 1975년만 해도 한국 평균 수명은 63세였는데요. 2022년 기준 까지 올라왔습니다(여성들은 이보다 더 오래 살고, 의료비를 더 많이 지출합니다.) 모두가 더 오랫동안 병원에 들락거리며 병원비를 지출하게 됐다는 뜻이에요. 1970년대 후반, 독일이 간호사의 중요성에 눈뜰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간호사가 몹시 부족하지만 간호대 졸업생이 부족한 건 아닙니다. 는 ① 장시간 노동 ② 야간 근무 ③ 경력 관리의 어려움 ④ 낮은 임금 체계 ⑤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으로 낮은 인식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떤 직군의 노동환경이 업무의 수준에 비해 열악하면 인력수요에 비해 인력공급이 부족해집니다. 이건 1960년대의 독일과 무척 비슷하죠. 


📚 김학선, 홍선우, 최경숙 「파독간호사 삶의 재조명(2009)」,  한국산업간호학회지 제18권 제2호

이대로 가도 될까?


🎬 Scene #5.

간호사가 더 부족해지면


옛날 파독 간호사: 지금 한국 의료계를 보면 괜히 마음이 이상해. 예전에 우리나라가 못살 때, 독일이 겪던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서는 ‘선진국은 사람들이 직업을 골라 갖기도 하는구나’ 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잖아?

어피티: 계속 간호사가 모자라면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옛날 파독 간호사: 그나마 대우가 괜찮은 대형 병원에만 간호사가 있을 테니 대학병원에만 가게 되겠지, 뭐. 그럼 계속 대학병원 진료가 몰릴 테고, 중소형 병원은 비보험 미용 진료나 비보험 영양제 처방 위주로 운영될 테고, 결국 건강보험료가 오를 거고, 극단적으로 치닫는다면 중소형 병원이 대부분 폐업해서 굉장히 오랜 시간 대기해야 진료를 받게 될 수도 있지. 아무리 건강보험료를 많이 낸다고 해도, 돈이 많은 소수의 병원에만 갈 수 있을 거고…


간호사 공급부족 문제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 앞으로도 수요는 계속 늘어날 텐데 이대로라면 공급은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경제학적으로 결과는 단 하나입니다. 서비스의 가격이 올라갑니다. 


가격 인상을 인위적으로 막는다면 부작용으로 서비스 이용이 심각하게 제한되죠. 은퇴한 이후 의료비를 크게 지출해야 하는 지금, 간호사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할 경제적 문제입니다. 노후자금의 대부분을 병원비로 날릴 수는 없으니까요.


📚 문혜경, 「전담간호사 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통합적 연구(2020)」, The Journal of the Convergence on Culture Technology (JCCT) Vol.6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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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지금처럼 인구 감소를 걱정하기 전에 인구 증가를 걱정하던 과거 한국의 모습을 돌아보았어요.


인구절벽이 있다면
인구보너스도 있(었)다


1970년이 되자 드디어 10년간 노력한 인구 조절 정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시작해요. 합계출산율이 4.5명까지 떨어집니다. 하지만 부모 두 명이서 아이 넷이라면, 여전히 두 사람이 두 배로 늘어난 숫자잖아요? 


정부는 1973년에 모자보건법을 발표하며 임신중절을 합법화합니다. 그러자 출산율이 극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the 독자: 그래봤자 50년대생·60년대생이 이미 많잖아요. 당장 인구가 막 줄어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어피티: 맞아요, 바로 그 지점에서 인구보너스가 탄생한답니다.


인구보너스(the Demographic bonus)는 가난하던 시절에 형제자매만 여섯 명, 일곱 명이던 어린아이들이 무사히 생산가능인구가 되는 시점에 발생합니다. 부모님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일자리의 질도 괜찮은 이 생산가능인구는 부모님보다 아이를 덜 낳기 시작해요.


the 독자: 그러니까 생산가능인구는 엄청나게 많은데, 그 노동력이 부양해야 하는 대상은 이전에 비해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가계 경제에 여유가 좀 생겼다는 이야기네요?

어피티: 정확해요! 그때는 평균수명이 지금만큼 길지는 않아서, 윗세대 부양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어요. 부양해야 할 인구가 많으면 이들의 생계를 위한 소비 때문에 질 높은 소비나 유의미한 저축이 어려운데, 그런 상황에서 좀 멀어지게 된 거죠.

the 독자: 부모님도 모셔야 하고 아이도 길러야 하는 와 딱 반대 상황이로군요. 


인구보너스는 ‘인구배당효과’라고도 해요. 요약해 보자면, ‘전체 인구에서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높아질 때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국가들의 경제성장 형태를 쫓아가 보면, 인구가 폭발하는 베이비붐 시기가 지나고 출산율이 아래로 꺾이기 시작하는 시점에 경제 성장이 본격적으로 이뤄졌어요. 이런 인구배당효과가 지속될 때 최대한 경제성장을 해 둬야만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기에 . 1990년대와 2000년대 중국의 고도성장도 바로 이 생산인구는 많은데 피부양인구는 적은, 인구보너스가 기여한 바가 큽니다. 중국은 인구보너스가 너무 일찍 끝났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인구감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때는, 사실 저출산이나 고령화 그 자체보다는 생산인구 비중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예요. 우리나라의 경우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와 자녀 세대인 X세대·MZ세대간의 일하는 방식과 가치관 차이가 있어요. 이는 세대별로 생산인구가 보편적으로 제공 가능한 노동의 종류나 형태가 달라지는 결과로 이어져요.


개인의 생애주기보다 긴
국가의 흥망성쇠 사이클

어떤 국가든 경제 발전 과정에서 생산가능인구는 늘었다가 줄어들게 되어 있어요. 인구구조 변화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출산률과 사망률이 모두 높은 단계↗️
  2. 출산률이 유지되며 ➡️ 사망률이 낮아지는 단계↘️ 
  3. 출산률과 사망률이 모두 낮아지는 단계↘️


그러니까 사망률 감소에 이어 출산율 역시 급속히 감소하는 3번 단계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인구보너스라는 경제성장의 추가적인 잠재력이 생성돼요. 잠재력이기 때문에 적절한 정책과 투자로 생산인구에 적절한 일자리를 주어야 발현될 수 있어요. 


한편, 인구보너스가 역으로 바뀌는 것을 ‘인구오너스(the Demographic onus)’라고 해요. 바로 우리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많은 생산가능인구는 세월이 지나면 많은 피부양인구가 됩니다. 인구보너스가 컸던 만큼 인구오너스도 클 수밖에 없어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양질의 인프라에 지난날의 인구보너스가 녹아 있습니다.


구체적인 과정에서 인도적 문제가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생산인구가 줄어드는 문제 자체는 해결책이 있어요. 생산력을 외부에서 데려오면 됩니다. 지금도 지역의 중소제조업이나 농어업 경제를 지탱하는 인력은 대부분 이주노동자예요. 


다만 이주노동자가 정착하지 않으면 내수시장규모 자체는 줄어들어요. 번 돈을 고향으로 송금할 테고, 여기서 가정을 꾸리고 부모님과 아이를 부양하며 돈을 쓰지도 않을 테니까요. 


사실 우리나라의 1990년대와 2000년대 인구정책은 방향전환이 꽤 늦었던 편이에요. 이번에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죠. 일본을 보면, 저출산이 반등하는 데에는


자, 이제 아래 뉴스들이 잘 이해될 거예요. 앞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면서 인구 문제의 큰 맥락을 살펴보세요.

🗞️ 뉴스 속 인구 문제 이야기

  • (2024.01.16, 세계일보)
  • (2024.01.29 이코노미스트)
  • (2023.02.20 한국경제)
  • (2024.01.30, 이데일리)
  • (2024.01.16, 연합뉴스)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김정인(20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경제사>
  • 김의동(2019). 한국경제 저성장 함정과 구조적 요인(중진국함정 주요 발생 요인과 비교를 중심으로), Asia-Pacific Journal of Business & Commerce 11(3), 126-156
  • 최슬기(2015). 한국사회의 인구변화와 사회문제-인구변동요인과 인구수/인구구조를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2015년 여름호(통권 제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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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201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나라 경제를 걱정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저출산·고령화예요. 두 현상 중 한 가지만 일어나도 대처하기가 만만치 않은데, 지금은 두 가지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나는 버거운 상황이에요. 피부양인구가 늘어나는 한편, 늘어난 피부양인구를 부양하는 생산인구가 줄어드니까요. 


어피티: (호들갑) 큰일이야, 큰일! 부양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경제활동할 사람은 줄어들어서! 😭

 🗞️ 70대 이상 인구, 20대보다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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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집계한 이래 처음으로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입학생이 30만 명대로 떨어지고,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등 미래 한국의 성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10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 인구는 631만9402명으로, 20대(619만7486명) 인구를 넘어섰다.


…지난해 65세 이상에 해당하는 ‘고령 인구’도 전년보다 46만여 명 늘어난 97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9.0%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최근 계속해서 떨어지며 기록을 경신하고 있어요. 인구 감소 추세가 계속 가팔라져,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 저하와 만성적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처지예요. 급격한 인구 감소는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문제를 일으켜요.

  • ‘시장의 크기’를 의미하는 인구수 감소로 발생하는 경제적 충격 
  •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부양대상인구 증가가 동시에 진행돼 생기는 사회적 부담


정책적으로 산아제한과 인구감소를 추진하던 1980년대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에요.


옛날사람: 라떼는~ 출산율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는데 😮‍💨

어피티: 왜요? 인구가 너무 늘어서요?

옛날사람: 그것도 있지만, 그것보단 ‘인구보너스’ 발생 시점을 기다렸던 거야.

어피티: 연말정산 보너스도 아니고, 인구…보너스? 


인구 보너스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우리나라가 못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아기 한 명 태어날 때마다 ‘이 아이는 또 어떻게 먹여살리나’ 한숨을 쉬던 바로 그 시절로요.


먹을 것은 없는데
식구는 많고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인구가 너무 늘어서 걱정이었어요. 몇몇 인구감소 표어는 지금도 유명해요.
  • 덮어 놓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1960년대)
  •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 낳을 생각 하기 전에 키울 생각 먼저 하자 (1980년대) 

그때는 아이가 많이 태어나는 것이 정말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취업하기 전까지는 누구든 ‘부양 대상’이거든요. 생산인구의 부양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아동과 노인이 같은 셈이에요. 


국가 재정이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면 이 지점에서 복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그러나 시장에 변변한 일자리도 없고, 정부도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일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가 돼요.


1953년 4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 「기아에서 헤매는 이 겨레의 참상」을 보면 1년간 전국에서 143명이 굶어죽었고 113명이 식량난으로 자살했으며 하루에 한 끼도 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사람이 210만 명을 넘어섰다는 취재 내용이 나와요. 아이 한 명 태어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죠.


당시에는 딸이 태어나면 조금만 제몫을 할 수 있게 돼도 식모로 보내버리는 일이 빈번했어요. 식모는 급여 없이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고용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1960년대에는 전국 가구의 30%가 식모를 뒀다고 해요. 식탁에 밥숟가락 하나 더 놓을 여유가 있는 가정이라면 누구나 식모를 부렸던 거예요. 1972년 경향신문에 실린 사설을 보면 당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 참된 보람

<1972.12.08 경향신문 사설>


…“난 네가 왜 동창들의 모임에 늘 빠지나 했더니 식모가 없어 그랬구나.” 


싸늘하게 식어가는 찻잔을 앞에 놓고 어떤 조소가 담긴 듯한 단어들이 거침없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대접해준 한 잔의 차가 그리도 못 마실 정도로 향기가 없었고 식모 없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무심히 표현한 말이라면 그 표현방법이 내 마음에 너무나 큰 저항감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왜 몰랐을까.

1960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6명까지 늘어납니다. 당시 정부는 연 2.9%에 달하는 인구성장률이 통제되지 않으면 도저히 경제발전을 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가족계획사업을 국가적인 과제로 채택하고, 출산억제책에 집중해요. 


사실 인구정책이 꼭 출생률에 대한 정책만 있는 건 아니에요. 주택정책이나 식량정책, 교육정책, 사회복지, 이민정책이 모두 인구 정책이에요. 우리나라는 산아 제한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것이 1994년까지 우리나라의 정책 패러다임으로 쭉 이어지게 되죠. 


*3월 5일(화) 머니레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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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물을 돈 주고 사먹게 된 이유(1)에서는 대한민국에 수돗물 불신을 불러일으킨 ‘페놀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죠. 오늘은 페놀 사건 그 이후, ‘합법화된 생수 시장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볼까요?

들어보셨나요?
‘공유지의 비극’

이처럼 어떤 재화와 관련된 시장이 생기게 되면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① 시장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에 재화의 품질이 올라갑니다 ② 품질은 올라가지만 (경쟁이 공정하게 이뤄지면) 가격은 내려가죠 ③ 수요가 아주 많다면 물건이 흔해져서, 접근성이 좋아집니다 ④ 시장이 커질수록 일자리도 늘어나고, 경제 규모도 성장하겠죠

그런데 생수 시장 같은 경우 생각해볼 거리가 있습니다. 마시는 물의 품질이 더 어떻게, 얼마나 좋아질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 수돗물과 편의점에서 파는 생수들의 품질은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수돗물과 편의점 생수의 가격을 비교해보면 수돗물이 훨씬 저렴합니다. 수돗물은 접근성도 좋은 편이죠.

더구나 생수 시장에는 예전에 예측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있습니다. ① 때문에 환경오염 문제가 생깁니다 ② 지하수 추출을 남발해 ,  등의 문제가 생깁니다 실제로 제주도는 요즘 지하수 고갈로 인한 지반 침하로 몸살을 겪고 있어요. 지하수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 많이 뽑아 쓰면 쓸수록 이익이라, 기업이 굳이 아껴가면서 뽑아낼 이유가 없거든요.  누가 주인인지 소유권이 명확하지 않은 공공재의 ‘과다이용’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과다이용된 공공재는 품질이 크게 떨어지거나 물량이 줄어들어 고갈되고요. 이런 걸 ‘’이라고 한답니다.  먹는 물이 상품화되면서 ‘공유지의 비극’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새로 생겨난 시장의 장점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장단점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큰지 따져보는 경제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합니다.

생수 시장이 만들어져서 생긴 이득
vs
환경오염에 일정 정도 기여해서 생긴 손실

지금은 기후 위기 때문에 전 지구가 난리라서, 이렇게 한번 말해보기로 합니다.

“수돗물 품질도 괜찮다는데, 정수기 시장이 세계 4위 규모일 것까지는 없지 않나? 
좀, 적당히 하면 안 되는 걸까? 
수돗물을 식수로 쓰면 줄인다는데.”

하지만 막상 누군가가 나에게 수돗물을 정수기 없이, 끓이지 않고 그냥 마시라고 하면 왠지 마음이 영 불안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죠. 물론 각 지역의 물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꼼꼼하게 잘 관리하고 있겠지만, 내가 마시는 수돗물이 안전한지 확실하게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 마시는 생수는 비교적 책임소재가 명확합니다. 품질관리를 잘 못하면 소비자가 돈을 주고 사 먹지 않을 테니, 수돗물보다는 더 꼼꼼하게 관리할 거라는 믿음이 생기죠. 공장이 아무리 커도 전국의 수돗물을 다 관리하는 것보다는 규모도 작아서 힘도 덜 들 것 같고요. 힘이 많이 들수록 품질 관리의 어려움도 커지니까요. 어떻게 보면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사 마시는 물의 값은 이런 책임과 신뢰에 지불하는 비용이랍니다.

저신뢰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

서로서로 믿지 못하는 저신뢰는 문화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이슈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시장거래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므로 이렇게 사고가 잦거나 문화적으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기면 비어 있는 신뢰를 채우기 위해 그만큼의 비용이 더 듭니다. 이렇게 문화와 경제는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저신뢰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죠. ‘유능하면 조금의 부정부패와 비리는 괜찮아!’라는 사고방식이 위험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기적으로 엄청난 비용으로 돌아오거든요. ‘믿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장치와 그것을 수행하는 인력 등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장에는 이유와 작동 방식이 명확한 규제가 필요하고 그 규제를 어길 땐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답니다. 생수 시장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공유지의 비극,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늘 라떼극장에서는 ‘신뢰’라는 프레임을 통해 생수산업의 역사와 경제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사회의 안정과 안전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믿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요?  사회의 불안이 높아질수록, 그리고 최근 코로나19처럼 전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럴수록 서로를 믿을 수 있어야 이 상황을 좀 더 효과적으로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이렇게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신뢰가 축적된 사회가 건강한 방식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점, 우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참, 1994년까지 정부가 생수 판매를 금지한 이유는 아래 두 가지였습니다.  ① 수돗물 이용률이 떨어질까봐 ② 빈부 계층 간 위화감 조성 우려 정서적인 이유도 컸다니, 조금은 의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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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돈 주고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온다더니 

옛날 사람: 아니,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고? 

요즘 사람: 그럼 물을 공짜로 먹어요? 물을 어디서 구해서 공짜로 먹어요?

옛날 사람: 우물물? 수돗물? 어쨌든 물은 사 먹는 게 아냐! 라떼는 말이야. 물을 돈 받고 파는 게 불법이었다고!

요즘 사람: 네에에에에에?!

물을 돈 받고 파는 게 불법이었던 건 조선 시대나 1950~1960년대 이야기가 아니랍니다. 생수 사업은 1995년에야 비로소이 되었거든요. 예전 어른들은 실제로 ‘이러다가 물도 돈 주고 사 먹겠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했어요. 당시에는 이런 얘기들이 말 그대로 ‘농담’이었죠. 

그렇다면 생수 사업이 합법이 되기 전까지 시장에서는 왜 물을 팔지 않았을까요? 그 배경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당시 정부가 생수 사업을 금지했던 이유는 라떼극장 맨 마지막에 알려드릴게요!) 
  • 대다수 사람들이 물을 ‘상품’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 그러한 대중적 인식을 고려했을 때 물을 판매할 경우 부작용이 우려되었으므로
  • 이것이 법에 영향을 미쳐, 팔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었던 거죠. 

그러다 이 모든 암묵적, 명시적 합의가 동시에 깨지고, 법이 바뀌고, 새로운 시장이 생겨난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입니다. 

꽤 괜찮은 수돗물을 
잘 마시지 않는 이유 

사실 우리나라의 수돗물 품질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랍니다. WHO의 166개 기준을 모두 통과할 뿐 아니라 국내 기준은 300개로 세계 기준보다 훨씬 꼼꼼하기도 합니다. 집집마다 수돗물 수질검사를 무료로 해주기도 하죠.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 했고, 1970년대까지도 서울에서 우물물을 길어 마시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죠?  2023년 기준 서울의 수돗물 직접 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비교적 낮은 수질을 제공하는 프랑스나 미국, 일본 등이 50~70%의 직접 음용률을 자랑하는데 말이죠.  우리나라 정수기 시장은 이미 2008년에의 시장이 됐고 현재는 까지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요즘 사람들이 대부분 정수기를 사용하는 뭘까요? 이 품질 좋은 수돗물을 ‘끓이거나 정수하지 않으면 그대로는 못 마신다’라고 생각의 근거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면 정수기 렌탈 비용도 안 내도 되고, 편의점에서 생수 사 먹을 일도 줄어들 텐데 말이에요.  수돗물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에요. 낙동강은 경상남·북도 인구 천만 명의 식수원입니다. 1990~1991년 사이 두산전자에서 낙동강 상류에 페놀 325t을 불법으로 방류하는 바람에 큰 문제가 되었죠.

🎬 Scene #2.

1991~1994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어피티: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됐나요?

피해 주민: 그걸 잘 몰라요. 사망자가 나오거나 하는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어피티: 일단 인명피해가 없는 건 다행이긴 한데… 

피해 주민: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었던 건요, 페놀 탄 수돗물이 충분히 위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대놓고 악취가 나니까 다행히 아무도 안 마셔서 그런 거예요.

페놀은 나일론, 제초제, 세제 등의 원료가 되는 화학물질입니다. 소량이라도 피부 접촉이나 흡입, 음용 등으로에 이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나치독일이 사용한 독가스의 원료이기도 해요. 이런 화학물질이 사람들이 마시는 수돗물에 들어갔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찔하죠. 

🎬 Scene #3.

사건의 수습과
그 결과 

어피티: 그럼 어떻게 수습됐나요?

피해 주민: 처음엔 공무원 7명이랑 두산전자 직원 6명 구속하고, 나머지 관계자들은 징계받았어요.

어피티: 네? ‘처음’에요?

피해 주민: 환경부(당시 환경처)에서 두산전자 얼른 수출해야 한다고 바로 조업을 재개시켜줘서 보름 만에 또 페놀이 낙동강에 흘러들어갔거든요.

어피티: 수출이 중요한 게 아닌데… 그래서요?

피해 주민: 난리가 났죠. 당시 두산그룹 회장은 경영권 포기하고, 환경부장관은 됐어요.

어피티: 그랬군요. 

피해 주민: 수돗물 못 믿는 건 물론이고, 맥주도 믿을 수가 없었죠.

이때까지 두산그룹은 사실 맥주나 김치, 햄버거를 주요 상품으로 하는 소비재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페놀유출사건이 터지고 나서는했죠. 그 맥주가 바로  지금은 외국계 기업에 인수된 입니다. 부동의 1위였던 OB맥주가 크라운맥주에 밀려나는 순간이었어요.

그렇게 두산그룹은 소비재 기업에서 중공업과 건설로 방향을 틀어버리고, 사람들은 웬만하면 수돗물을 안 마시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자 정부도 그때까지는 불법으로 규제하던 생수 사업을 합법으로 만들어줄 수밖에 없었죠.

*다음 주 화요일(1/30) 머니레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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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라떼극장>에서는 국제신용평가사 3사와 국가신용등급의 대략적인 역사를 알아봤어요. 국제신용평가사는 100년 넘은 회사들로, 시장과 산업에 대한 통계를 출판하는 ‘출판사’로 시작했다는 내용이었죠. 

오늘은 지난주에 예고한 대로 이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볼게요.

① 국가의 신용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는지
② IMF 때 우리나라가 국가신용등급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③ 요즘은 국가신용등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① 신용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는 걸까?

🎬 Scene #1.

국가: 돈이… 부족해…

어피티: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있는데, 돈이 왜 부족해요? 

국가: 정책을 집행하고 국가를 잘 운영하려면 세금만으로는 부족해요. 예산으로 충당이 안 되기도 하죠. 그래서 추가경정예산을 짜는 거고요.

어피티: 개인이 돈이 부족하면 은행에서 대출받으면 되는데. 국가가 돈이 부족하면 어떻게 하나요?

국가: 국가가 채권을 발행해서 투자자에게 판답니다. 투자자들에게 ‘우리나라 국채를 사주면 나중에 이자 쳐서 돌려줄게요’라고 하는 거죠. 

어피티: 투자 근거는 어떻게 확인하죠?

국가: 이 나라가 돈을 잘 갚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나타내는 ‘국가신용등급’을 보면 돼요. 투자할 만한 국가인지, 리스크는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지표거든요.

어피티: 국제신용평가사가 그 평가를 하는 거죠?

국가: 네, 과장을 좀 섞으면 전 세계에서 국제신용평가사 3사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봐야죠.

국가를 운영하려면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개인이나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싶어 하죠. 이럴 때 채권이 발행됩니다. 

투자자가 채권을 사면, 정해진 기간 후에 이자를 더해서 원금을 돌려줘요. 이때 투자자는 국가신용등급을 보고 이 나라의 채권을 살지 말지 결정합니다.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기준은 회사나 개인의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국제신용평가사가 그 나라의 경제적 요소뿐 아니라 정치적 요소까지 모두 고려하거든요. 

개인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는 집안이 얼마나 화목한지 따지지 않지만, 국가의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는 정치적으로 얼마나 평화로운지도 중요하다는 거죠. 그 나라 정부의 성향도 따지고요.

이렇게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능력을 지닌 신용평가사가 세계에 몇 없기 때문에 S&P와 무디스, 피치 이렇게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자꾸만 힘이 세지는 거랍니다.


② IMF 때 우리나라가 신용등급 때문에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고?!

IMF 외환위기가 왜 일어났는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에서 2회에 걸쳐 다뤘죠.

당시 머니레터 내용을 요약하면

① 세계적으로 금리가 낮아
② 우리나라도 마구 돈을 빌려서 사업을 확장했는데
③ 미국이 갑자기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세계 금리가 따라 올라서
④ 원금과 이자를 갚을 돈(달러)이 부족해지는 바람에 
⑤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거였어요.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가 정말로 돈이 없었던 상태였냐, 하면 그런 건 아닙니다.

다음 달 월급 믿고 카드 긁다가 순간적으로 월급보다 카드 결제금액이 많이 나온 상황에 가까웠죠. 전문용어로는 ‘유동성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정부가 외국의 투자자들에게 돈을 갚아야 하는데, 갚을 돈이 일시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탁하죠.

🎬Scene #2.

정부: 다음 달에 돈 들어오면 다 갚을 수 있다니까? 우리가 돈을 못 벌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잠깐 현금흐름이 삐끗한 건데, 갚는 날짜 조금만 미뤄주라! 상환 기간 연장 좀 해달라고!

투자자들: 그래…?

정부: 그럼! 진짜야! 우리가 잘나가는 수출국인 거 알지?

투자자들: 근데,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너희 말 거짓말이래.

정부: 뭐?! 국제신용평가사들아, 우리 갚을 수 있다니까? 좀 자세히 조사해보라고!

국제신용평가사들: 

투자자들: 한국 신용등급 끝없이 내려가네. 안 되겠다. 지금 돈 갚아. 이러다 돈 떼이겠네.

정부: 국제신용평가사들 완전 저승사자네. 그래, 난 오늘부터 죽었다고 생각한다. IMF님들… 돈 좀 빌려주세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강등 조치도 이후 IMF 구제금융의 내용도, 사실은  과한 대응이었다는 의견이 많아요. 어쨌거나 1997년에 너무너무 고생한 나머지 아직 그 후유증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가신용등급에 굉장히 민감해졌습니다. 국제신용등급이 변할 때마다 핫뉴스가 되는 이유예요.

③ 요즘은 국가신용등급이 
어떤 역할을 할까?

참고한 논문 자료를 인용하자면 ‘국가신용등급은 한 국가와 그에 속한 기업과 금융기관이 원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기준’이라고 합니다.

은행이나 대기업의 신용등급은 거의 그 국가의 국가신용등급과 동기화돼있거든요. 사실상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가신용등급을 보고 은행과 대기업, 국영기업, 공기업 등과 거래를 하는 거예요. 각국 정부와 기업들도 자신의 신용등급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건강검진처럼, ‘전문가’의 눈으로 경영 상태를 진단해 보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리스크가 있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약점이 사실은 큰일이었다면 미리 고칠 수 있거든요.

🎬 Scene #3.

전 세계 국가들: 아 진짜, 국제신용평가사들 그냥 확! 절교할까 보다!

어피티: 무슨 일이죠?

전 세계 국가들: 국가에 점수를 매기면서 큰소리치는 거 이해해요. 시험성적으로 실력 전부를 평가할 순 없는 거지만 그래도 시험을 안 치르면 뭘 보고 뽑아야 할지 아예 모르게 되니까요. 시험 내고 점수 주는 쪽이 갑이죠. 근데 그러면, 최소한 중간고사 A+ 맞은 학생이이 그 학기에 성적 불량으로 학사경고 받는 일은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어피티: 국제신용평가사들의 평가가 정확하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전 세계 국가들: 맘놓고 믿기는 어렵다니까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본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알아요?! 건강검진이라 생각하고 받았는데, 검사 결과에서 안전하대서 안심했더니 여기저기서 위기가 팡팡 터졌다고요!


인간미 있는 신용평가사(?)

물론 국제신용평가사들도 당연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때도 마찬가지였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시작됐습니다. ‘’라는 이름의 175년 된 회사가 무너지면서 세계 경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리먼 브라더스가 망하기 전,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이 회사와 이 회사의 고 했다는 점이에요. 당연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죠.

이후 국제신용평가사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아우성이 빗발쳤지만, 어쩌겠어요. 2008년 이후 세계 경제가 너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오히려 더욱더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한 국가와 회사에만 투자할 수밖에 없게 돼버렸는걸요.

전 세계적인 위기상황이니 애먼 데 투자하는 것보다는 아쉬운 평가방식이라도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한 곳에 투자하는 게 안전하다 싶었을 거예요.

국제신용평가사 3사의 현행 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잠시 뒤로 하고 금융위기 발 경기침체를 이겨내자고 다짐한 순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버린 게 2020년이었습니다.

다행히 다른 나라 국가신용등급은 줄줄이 강등되는 와중에 우리나라만 되는 애국심 차오르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슈로 전 세계 국가가 경제적인 위기를 맞게 되면서, 신용등급 유지가 칭찬할 일이 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진 셈이에요.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3대 신용평가사 모두에게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용등급 은 단기적으로 가계부채, 중장기적으로는 인구절벽과 고령화가 꼽혀요. 사회의 어떤 면을 중점적으로 관리해야 하는지 정말 명백하죠?

신용등급이 진짜 중요한 이유

2주에 걸쳐 국가신용등급이 왜 중요한지, 국가신용등급 발표 뉴스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능력이자,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신용’은 자본주의에서 정말 중요한 개념이죠. 

‘나’라는 개인의 신용등급 못지않게, 내가 소속된 기업과 국가의 신용등급도 중요하답니다. IMF 때처럼 개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만들 수 있거든요. 우리가 신용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신용을 높여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랍니다.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최호상(2017), 「재정위기 이후 국가신용등급 결정요인 분석에 관한 연구」, 경제연구 제36권 제1호 146p.~168p. , 한국경제통상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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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피티: 아니, 미국의 신용등급을요? 뭔가 큰일이 난 것 같은 느낌이에요.

옛날사람: 라떼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인데 말이죠. 허허허.

하지만 11월,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마저도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 S&P는 이미 2011년에 낮춘 신용등급을 .

미국 입장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 만도 할 겁니다. ‘니들이 뭔데 날 평가해?’


🎬 Scene #1.

어피티: 신용평가사라는 회사들은 대체 뭔데 나라들을 평가하나요?

옛날 사람: 하하, 이것 참. 옛날얘기를 해드려야겠군요. 라떼는 말입니다, 한국엔 신용평가사가 있지도 않았어요.

어피티: 네? 그럼 한국엔 신용평가사가 언제 생겼는데요?

옛날 사람: 1980년대요. 하지만 무디스같이 유명한 국제 신용평가사는 1903년부터 이미 유명했지요… 

어피티: 무디스면… IMF 때 라고 욕 엄청나게 먹은 회사네요?

옛날 사람: 무디스만 욕먹은 건 아니죠.

IMF 외환위기 직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Moody’s)와 (Fitch), (Standard&Poor’s)는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최대 12단계까지 강등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에 내린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내렸어요. 

자고 일어나면 한 단계 더 내려가 있고, 이틀 뒤에 보면 또 내려가 있고, 일주일 뒤에는 새로운 위험이 발견됐다며 더 내리는 식으로 최대 열두 단계를 연쇄적으로 내려버린 거죠. 이 방식이 신용등급을 한 번에 크게 내리는 것보다 불안감을 더 자극합니다. 대체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당시 국제신용평가사들을 ‘저승사자’로 불렀던 이유입니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위기에 확실한 치명상을 입혔다는 의견도 있어요. 이쯤 되니 더 궁금해집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뭐길래 국가를 평가하는 걸까요?

라떼는 무디스가
출판사였다네

가장 오래됐고, 많은 국가와 금융기관을 평가하며, 전 세계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면서 회사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국제 신용평가회사 세 곳을 ‘세계 3대 신용평가사’라고 합니다. 무디스와 피치와 S&P 세 곳이에요. 이 중 무디스의 이야기가 제일 유명합니다. 

무디스는 처음에 미국의 출판사였습니다. 소설이나 동화를 출판하는 곳은 아니었고, 각종 시장 통계를 모아서 책을 냈습니다. 책의 이름은 <Moody’s Manual of Industrial and Miscellaneous Securities>. 정부의 공공기관과 각종 산업의 통계, 회사와 은행들의 주식과 채권에 대한 잡다한 통계를 모아 낸 책이었죠. 여기서는 간단하게 ‘무디스 매뉴얼’이라고 할게요. 

지금으로 치면, 무디스 매뉴얼은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이나 국토연구원의 경제동향브리프 또는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 각 회사 홈페이지의 IR 메뉴, 매년 나오는 서적 <트렌드 2024>과 비슷한 상품이었죠. 당시에 이 무디스 매뉴얼이 완전히 대박을 터뜨립니다. 1903년, 그러니까 책이 출간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전국적으로 인정받게 돼요.

최초의 유선전화가 발명된 지도 30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가는 게 한 사람 인생에서 일대의 도전이기도 했던 시절. 뉴욕에 있는 은행의 경영 상태라든가 피츠버그 철강 공장의 연간 판매량 같은 걸 일반인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디스 매뉴얼이 나오면서, 일반인이 미국의 시장이 돌아가는 판을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전문 투자자나 기업인에게도 좋은 참고 자료였지만 일반인에게도 주식과 채권 등 금융상품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특히 해외 투자자에게 더없이 였어요.


🎬 Scene #2.

어피티: 그렇게 오늘날의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된 건가요?

옛날 사람: 그런 건 아닙니다. 혹시 세계 경제 대공황이 언젠지 아세요?

어피티: 1929년에서 1939년까지 10년 정도요.

옛날 사람: 그때 거의 모든 회사가 줄줄이 부도가 나고 파산을 했는데… 무디스가 괜찮다고 평가했던 회사들은 대부분 . 다른 주식들이 휴지조각이 될 때 무디스가 찍은 회사들의 주식은 투자자들의 자산을 지켜낼 수 있었죠.

어피티: 우와… 

옛날 사람: 무디스가 지금의 무디스가 된 이유죠.

피치와 S&P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치는 회사와 회사의 보안에 대한 통계 보고서를 제공하는 출판사로 시작했습니다. S&P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어요. 대학원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모두가 알 만한 출판사, 이죠. 미국의 대학 교재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출판사예요.

신용평가사가
막강해진 이유


굳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순위를 매기라면 S&P가 1위, 무디스가 2위, 피치가 3위 정도 됩니다. 전 세계 모든 고급 학문 교재를 출판하는 맥그로힐이 책 내에서 S&P 지수를 자주 인용하면서 영향력이 더 커지기도 했어요.


🎬 Scene #3.

어피티: 스토리만 보면 무디스가 1위일 것 같은데요.

옛날 사람: 무디스가 좀 극적이죠? S&P는 원래 푸어(Poor)라는 사람이 세운 회사인데요. 무디스보다 좀 더 체계적인 단일업종 기업분석으로 시작했다가, 1941년에 Standard라는 통계정보기업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S&P가 된 거라 아무래도 창업 스토리에 드라마틱한 맛은 좀 떨어져요.

어피티: 여하튼, 그래서 다들 투자 정보를 필요로 하면서 신용평가사들이 지금처럼 커진 건가요?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 매길 때마다 신문 1면에도 나고, 지상파 뉴스 앞쪽에 뜨잖아요.

옛날 사람: 그건 또 다른 이유가 있죠.

사실상 3대 신용평가사의 평가가 웬만한 나라를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IMF 시절의 한국이었죠.  그런데 신용평가사들이 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힘이 세진 걸까요? 

정답은 ‘미국정부 때문’입니다.

1929년에서 1939년 사이, 전 세계가 대공황을 겪은 뒤, 미국 정부는 다시는 대공황 같은 사태를 맞이하지 않도록 . 당시에 수많은 기업이 망하는 와중에도 신용평가사에서 ‘투자 적격’이라고 했던 회사들이 많이 살아남은 걸 보면서, 신용평가사의 평가에 투자 결정을 의지하기로 한 거예요. 

그렇게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자국 은행이 채권을 사려고 할 때, 신용평가사가 ‘투자 적격’ 등급으로 평가한 채권만 살 수 있게 했습니다. 또 기업이라면 반드시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평가받도록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1973~1975년 사이 신용평가사의 위상은 지금처럼 강해지게 되죠.


🎬 Scene #4.

어피티: 신용등급 평가를 의무화하는 건 좀… 신용평가사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거 아닌가요?

미국 정부: 맞아요. 신용평가사도 틀릴 수 있죠. 그래서 도 많았고요. 그런데 신용평가사 아니면 어떻게 기업 안정성을 점검하겠어요? 대안이 나올 때까진 이대로 가는 거죠.

미국에서는
미국 법을 따르라

무역이 활발해지고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어 다니면서 경제는 세계화 시대에 접어듭니다. 전 세계 최대의 소비자인 미국과 중국, 그중에서도 미국의 힘은 막강하죠. 미국에 물건을 팔거나 투자를 받으려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합니다. 미국 법을 따르려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평가받아야 하고요.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그렇게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됐답니다. 어쨌든 기업과 국가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라는 사실이 그 영향력을 뒷받침해주죠.  자, 이제 이 뉴스가 잘 이해될 거예요. 앞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면 차근차근 살펴 보세요!
  • (2024.01.08, 매일경제)
  • (2023.12.05, 데일리안) 
  • (2022.11.01, SBSbiz)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Timothy J. Sinclair (2005). The New Masters of Capital: American Bond Rating Agencies and the Politics of Creditworthiness, Cornell University Press.
  • White, Lawrence J. (Spring 2010). “The Credit Rating Agencie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4 (2): 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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