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된 전통 가옥(?)에 사는 파리지앵들

글, 어예진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경제TV에서 기자와 앵커로 일했고요. 지금은 국내 경제,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이번에는 낭만의 도시 파리가 있는 프랑스로 떠납니다. 


200년 된 아파트가 있다고?


영상이나 사진에서 보는 프랑스 건물들은 하나같이 우아하고 근사한 느낌입니다. 옅은 회색빛과 아이보리색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석회암 벽, 큼직한 창문과 테라스. 전형적인 오스만 양식의 건물들이에요.

출처: UN JOUR DE PLUS PARIS


프랑스 파리에서 ‘오래된 아파트’라고 하면 200년은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습니다. 파리는 대부분의 건축물이 문화재 그 자체입니다. 30년만 지나도 재건축 얘기가 나오는 우리나라와 달리 외관과 내부 모두 꾸준히 보수하고 리모델링하며 살아가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래서 누가 90년쯤 된 아파트를 구했다고 하면 “와 되게 새거다~” 이런 반응이 나오죠.


지금 파리의 반듯한 도시 구조와 3만여 채의 비슷비슷한 건물들은 1853년에서 1870년 사이에 지어진 것들입니다. 1848년 나폴레옹 3세가 파리의 도시 개선을 위한 재정비 사업을 오스만 남작에게 맡겼고, 이때 지어진 건물 양식을 오스만 양식이라고 불러요. 석조 외관과 연철 발코니, 경사진 아연 지붕이 특징이죠.

1845년 PARIS COMIQUE에 실린 그림
파리를 구역별로 나눈 지도
출처: efficity

흥미로운 사실은 오스만 양식의 아파트가 당시 사회 계층 구조를 반영했다는 거예요. 사진을 보면 당시 가장 부유한 세대가 발코니가 있는 2층에 살고, 가난한 사람 또는 하인이 가장 위층에 사는 모습입니다.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사진 같은 지도는 파리를 구역별로 나눈 지도입니다. 1구역부터 20구역까지 마치 달팽이 모양처럼 시계 방향으로 이어지지요? 가장 중심부일수록(붉을수록) 비싸고 오른쪽 외곽으로 갈수록(진한 초록색일수록) 집값이 내려갑니다. 

 

집값이 비싼 지역일수록 오래된 건물이 많은데요. 도시가 계획되던 1900년 당시 관공서처럼 가장 중요한 시설들을 중심부에 만들었고, 최고급 아파트들 역시 그 주변에 지었다고 해요. 입지와 교통 모두 매우 편리한 지역이죠.


특히 1900~1930년대 지어진 건물에는 프리미엄이 더 붙습니다. 당시 부르주아들이 자신들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건물 외관에 대리석과 석회암을 아낌없이 사용하고, 내부 장식에도 신경을 썼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때 지어진 건물이라면 가격이 좀 더 비쌉니다. 


늙었다고 무시하지 마라


그래도 100년이 넘은 집들인데 삐그덕거리고 낡았을 텐데 비싸봐야 얼마나 하겠어?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집값이 매우 비싼 지역인 파리 6구역에 방 두 개짜리 아파트 렌트 가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출처: PARIS CORPORATE HOUSING


사진 속 다소 낡은 아파트는 19세기 초반에 지어진 오스만 형식의 아파트입니다. 침실 1개와 서재 정도로 쓸 수 있는 방 1개, 그리고 거실이 있는 18평짜리 공간이죠. 이곳의 월 임대료는 23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440만 원이 넘습니다. 주방과 화장실이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있고, 웬만한 가전제품도 구비되어 있습니다. 4층이지만 엘리베이터는 없고, 난방은 사진에서 보이는 일명 ‘라디에이터’를 사용합니다. 아, 물론 에어컨은 당연히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에어컨 없는 집이… “여기에 있어”


파리에 있는 오래된 건축물에는 아파트든 회사든 에어컨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은 건축법이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실외기 설치가 불가합니다. 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건물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허가를 내주지 않아요. 새로 지은 아파트나 건물은 에어컨 설치가 가능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맥도날드, 스타벅스, 백화점 정도는 가야 에어컨 냉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유럽 곳곳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사냐는 저의 질문에 파리에서 살고 있는 지인은 이렇게 말 하더군요. “나만 에어컨이 없으면 괴롭지만 모두가 없는 상황이니 불만이 거의 없어. 요령이 있으면 버틸만 해.” 선풍기와 냉풍기로 요령껏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폭염이 잦아지면서 이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네요.


에어컨뿐이 아닙니다. 프랑스는 대부분 이렇게 오래된 집들이 많아서 난방이 잘 안 되고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등의 하자가 흔하다고 해요.


외국인도 받을 수 있는 주택보조금


프랑스에는 꺄프(CAF – La Caisse d’allocations familiales)라는 주택보조금이 있습니다. 프랑스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도 지원 대상이라는 점이 놀라운데요. 집세와 집의 크기, 대상자의 소득 등을 고려해서 매달 현금으로 지원이 나옵니다. 심지어 국립 기숙사나 학생 아파트에 살더라도 지원금이 나오죠. 지역, 혹은 대상자의 조건에 따라 많게는 월세의 절반까지 지원을 받을 정도로 그 규모도 적지 않습니다. 


프랑스인들에게도 파리의 비싼 집값은 부담스럽기 때문에, 청년들은 주로 룸메이트와 함께 살거나 동거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만약 함께 사는 이들이 보조금 신청을 각각 따로 한다면 해당 월세에 대한 주택보조금은 나눠서 지급된다고 하네요. 


또 프랑스에는 매우 독특한 청년 주거비 보조정책이 있습니다. 바로 노인과 함께 거주할 경우 월세를 지원하는 제도인데요. 첫 편에서도 잠깐 소개해 드렸죠. 청년들이 혼자 사는 노인들과 함께 거주하며 그들이 필요한 심부름을 하거나 각종 집안 일을 거들어 주는 대신, 저렴한 월세에 또는 아예 무료로 거주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르신 댁에 살면서 강아지를 대신 산책시켜 주고, 월세는 아예 내지 않는 친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같은 제도를 통해 노인들은 외로움과 소외감을 해소할 수 있고 일종의 사회적 돌봄이 가능해지며, 청년들은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가 가능하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생각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런 형태의 임차는 월세 수입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도 않고, 임차인에게도 월세도 보조해 주면서 권장하고 있어요.


역사 VS 환경… 무엇을 지켜야 할까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오래된 건물, 오래된 아파트들의 에너지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는 점이에요. 구식 난방, 기름 보일러, 오래되고 효과가 떨어지는 단열재. 모두 프랑스의 탄소 감축 목표 달성을 저해하는 요인이죠.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 에너지 소비의 거의 절반, 탄소 배출의 3분의 2가 건물에서 일어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건물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3분의 2는 일반 가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고요. 그래서 광범위한 주택 리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주택을 리노베이션 해야 할까요? 다들 기본 100년은 된 집들인데 99년은 괜찮고 101년은 리노베이션이 필요 하다고 하면 될까요?


그 기준은 DPE(Diagnostic de performance énergétiqu), 우리말로 ‘에너지 효율 성능 진단 점수’, 그리고 GES(Gaz à effet de serre)라고 하는 ‘온실가스 배출 기준’으로 따집니다. 


사람들이 와서 이 집이 단열재는 규격에 맞는 두께로 잘 썼는지, 전구는 에너지 효율이 어떤지, 보일러는 뭔지, 환기는 잘 되는지, 유리는 단열 유리인지 이런 걸 점검하고, 결정적으로 1제곱미터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해 점수를 내는 겁니다. 


그 점수는 A부터 G까지로 매기는데요. 프랑스에서 집을 팔 때는 이 등급 점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참고로 등급이 G인 집은 올해 안에 보일러를 바꾸거나 단열 보강 등 수리를 통해 등급을 올리지 않으면 내년인 2025년 1월 1일부터는 집 임대도 내놓을 수 없게 됩니다. 2028년부터는 F 등급도 임대가 불가하다고 하니, 집주인들이 지출이 많아져 속앓이 좀 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점수가 높을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이라는 의미여서 집값도 더 비싸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요. 문제는 프랑스에서 5%가 안 되는 집만 에너지 효율 기준에서 최상등급을 받았고 대부분은 D라고 하네요. 


현재 기준으로 F와 G 등급 주택이 520만 채인데 이들이 자칫하면 4년 안에 임대 자격을 잃게 되는 겁니다. E, F, G 등급을 모두 합치면 프랑스 전체 주택의 40% 가량 된다고 하는데요. 만약 기한 안에 기준을 갖추지 못해 주택 시장에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면 집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프랑스 파리에는 100년 이상 된 아파트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이 19세기 파리 도시 재정비 사업 때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 당시 사업을 기획했던 오스만 남작의 이름을 따 오스만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석조 외관과 연철 발코니, 경사진 아연 지붕이 특징입니다.
  • 파리는 1구역부터 20구역까지 마치 달팽이 모양처럼 시계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1구역, 6구역을 비롯한 중심부가 가장 집값이 비쌉니다.  
  • 파리의 아파트는 에어컨이 없습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은 건축법이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실외기 설치 허가를 내주지 않습니다. 
  • 프랑스에는 꺄프(CAF – La Caisse d’allocations familiales)라는 주택보조금이 있습니다. 프랑스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도 지원 대상이며, 집세와 집의 크기, 대상자의 소득 등을 고려해 매달 현금으로 지급됩니다.
  • 프랑스 정부는 오래된 아파트들의 낡은 난방 시스템과 오래된 단열재가 탄소 배출을 증가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주택마다 에너지 효율 등급을 매기고 효율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향후 임대를 제한한다는 계획입니다.


💌 <청년 주거 세계여행>은 매주 수요일 머니레터에 연재됩니다

공유하기

관련 글

peter-nguyen-CQhgno3yhv8-unsplash
국민의 90%가 1주택자인 나라, 싱가포르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마지막 연재입니다. 오늘 여행은 자가 주택 보유 비중이 90%에...
international-2681322_640
한국 다음으로 아파트에 많이 사는 나라, 스페인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오늘은 정열의 상징 스페인으로 떠나보겠습니다.
화면 캡처 2024-08-04 143902
일단 들어가 사는 사람이 임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오늘은 저 멀리 아프리카 대륙 중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화면 캡처 2024-07-25 105445
아파트로 변신하는 미국의 사무실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이번 칼럼은 머니레터 편집부의 요청으로 대학생 어예진의 미국...

경제 공부, 선택 아닌 필수

막막한 경제 공부, 머니레터로 시작하세요

잘 살기 위한 잘 쓰는 법

매주 수요일 잘쓸레터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