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마르크화를 벽지로 바르는 모습. 출처: 독일 연방 문서보관소
우) 마르크화를 땔감으로 쓰는 모습. 출처: ⓒ Everett Collection
그런 일이 또 있었나요?
너무 오래전 얘기인 듯하여 비교적 최근 이야기도 들려드릴게요. 70년대 석유파동 당시를 가리켜 ‘The Great Inflation(대인플레이션)’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강한 인플레이션이 꽤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었기 때문이죠.
독일이 겪었던 심각한 하이퍼인플레이션까지는 아니었지만, 10년 이상 이어진 꽤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 경제를 짓눌렀어요. 당시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 경제가 상당히 힘겨웠을 정도니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죠. 어렸을 때 한국의 경제 위기를 얘기할 때 1, 2차 석유 파동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인플레이션이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그 인플레이션이 경기가 좋아져서, 사람들의 소득이 늘고 소비가 강해져서 찾아오는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좋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나타나는 이른 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나쁜 인플레이션)이었기 때문이죠. 서민들의 소득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건가요?
당시 전 세계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 자원인 석유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석유파동이 일어났어요. 대부분의 제품 가격 상승으로도 이어졌죠. 원료 가격의 상승이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전이되면서 이른 바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이어졌던 겁니다. 좀 더 앞의 상황을 살펴볼까요?
1945년 2차 대전이 종료된 이후 미국 경제는 거대한 전후(戰後) 인플레이션을 경험합니다. 군인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상당한 포상금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들은 억눌려있던 소비를 폭발시켰습니다.
문제는 당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군수품 제작에 몰입하고 있다 보니, 폭발적인 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거죠. 상황이 지속되면서 물건의 가치는 오르고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찾아왔어요. 그런 흐름은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다만 전쟁을 거치면서 기업들의 기술력이 좋아졌기 때문에, 이들 기업이 군수 물자 생산에서 생활 용품 제작으로 모드를 빠르게 전환하면서 공급이 금방 늘고 물가는 점차 안정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1950년대 초 이후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난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흐름은 1960년대 중반까지도 이어졌죠.
그럼 잘 해결된 거 아닌가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 듯합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대통령이었던 린든 존슨은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라는 정책을 발표하는데요, ‘미국이 소련보다 못살 이유가 없다’라는 주장과 함께 과감하게 재정 지출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됩니다.
당연히 국가부채가 크게 증가했고요, 그렇게 풀어준 돈으로 사람들은 소비를 크게 늘렸겠죠. 뒤를 이어 취임한 닉슨 대통령 역시 더욱 강력한 복지 정책으로 재정 적자를 크게 늘리게 되자, 미국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더욱 약해지게 되었어요.
화폐 신뢰의 하락, 혹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고 했죠. 1950년대 이후 거의 15년 이상 겪어보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이 미국에서 부활하고 말았어요.
물가 상승세가 강해지니 사람들은 물가가 오르기 전에 물건을 미리 사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미래의 소비를 현재로 당겨 오게 됩니다. 그럼 소비가 더욱 크게 늘면서 인플레이션이 보다 강화되는 결과를 낳죠. 한동안 그 순환이 반복됐어요.
여기서 끝이 아닌가요?
1973년 10월 7일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합니다. 당시 중동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초기에는 승기를 잡았지만, 이후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며 전세가 역전, 패퇴했어요. 이에 분노한 중동 국가들은 대미 원유 수출을 금지해 버리게 됩니다.
원유 공급이 넘쳐나는 시기에 원유 수출을 멈추게 되면 그 효과가 약할 수 있지만,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이 금수(수입이나 수출을 금함) 조치를 내리니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었죠.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심리가 강한 상황에서 이런 일까지 터지니 사람들은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원유를 미리 사들이기 위해 주유소를 향했던 미국 사람들은 ‘No Gas’라는 팻말을 보고 실망한 발걸음을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배럴 당 3불에 불과했던 국제유가는 11불까지 상승했어요.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4차 중동전쟁의 상흔이 가라앉을 즈음이었던 1979년 초, 이란에서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나요. 당시 친미 정권이었던 팔레비 왕조가 축출되면서 호메이니가 이란의 정권을 잡았고, 원유 수출 등에 있어 미국을 강하게 압박하게 됩니다.
다시금 중동 지역 정정 불안을 반영하면서 국제유가가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는데요. 배럴 당 10불 수준이던 머물던 유가가 이번에 44불까지 뛰었어요. 1973년 배럴 당 3불에서 80년 초 40불이 넘게 뛰었으니 원자재 가격 부담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했는지 체감이 되실까요?
이후엔 어떻게 됐나요?
이렇듯 정부 정책의 여파로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도 강한 상황에서 10여 년 가깝게 이어진 중동의 정정 불안까지 겹치면서, 원료 가격이 올라가는 비용인상 인플레이션이 The Great Inflation을 만들어냈던 거예요.
이걸 치료하기 위해 80년 당시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20%까지 인상하는 초강경 대응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한 경기 침체를 용인했던 거죠.
1차 세계대전 직후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그리고 70년대 석유 파동 당시 대인플레이션까지 보면서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경제를 힘겹게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엔 디플레이션의 공포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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