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까지 두 편에 걸쳐 어떻게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 깨어났는지 말씀 드렸죠. 인플레이션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오판 하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 너무나 과감한 돈 풀기에 손을 댔어요. 인플레이션의 파수꾼으로서 중간에 방향을 틀 기회도 있었지만, 물가가 본격적으로 올라서고 있을 때에도 ‘일시적’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돈 풀기를 멈추거나 막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부양책을 이어간 것, 그리고 중간에 선제적으로 방어할 기회를 놓친 것이 40년 간 호리병 속에 갇혀 있던 인플레이션을 깨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럼 이제 다시 인플레이션을 호리병 속에 넣어야 하겠죠?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마치 치약을 짜내는 건 쉽지만 짜낸 치약을 다시 안으로 밀어넣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요. 팬데믹 이후 코로나19는 어느새 희미한 기억이 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은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우리의 삶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어렵더라도, 그리고 늦었더라도 인플레이션을 제압하려면 첫발을 떼야겠죠. 그런데 전방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워낙 강해졌기에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입니다. 40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인 만큼, 그걸 해결하는 매뉴얼도 40년 전의 경험을 뒤져봐야 하지 않을까요?
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낮출 수 있나요?
연준의 돈 풀기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었는데요. 한 축은 금리 인하였고, 다른 한 축은 양적완화였습니다. 연준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직후 기준금리를 바로 0%까지 인하했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코로나19의 충격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준은 채권 시장에서 직접 국채를 사들이면서 달러를 찍는, 이른바 ‘양적완화’를 단행했습니다. 양적완화를 통해 돈의 절대 수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고, 0% 금리의 돈을 마구잡이로 시중에 공급해 준 거예요. 이를 위해 연준은 매월 10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장기 국채를 사들였어요.
그렇게 해서 인플레이션이 부활한 현재의 상황이 되었으니,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걸 되감아야 할 겁니다. 그럼 앞에서 한 일을 다시 반대로 해야 하겠죠. 국채 사들이기를 멈추고 금리를 인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채를 워낙 많이 사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뚝 멈춰버리면 혹여나 경기 침체 등의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곧바로 실행하긴 어려웠어요. 2021년만 해도 오미크론(이젠 추억의 이름이네요)과 같은 변종 바이러스가 남아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에 돈 풀기를 단칼에 멈추기 쉽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국채 사들이는 금액을 조금씩 줄이는 에 돌입했습니다. 수도 꼭지의 물을 조금씩 잠근 거죠. 자동차 운전으로 따지면 브레이크를 밟진 않았지만 엑셀을 서서히 놓으며 속도를 조절한 것입니다. 실제 테이퍼링이 시작된 것은 물가가 제대로 올라오기 시작한 2021년 3월에서 8개월이나 떨어진 2021년 11월이었어요. 그리고 이듬해 초, 양적완화를 통한 국채 매입은 종료됩니다.
양적완화 종료 이후에는 금리를 인상할 차례였겠죠. 2022년 3월 기준금리가 0.25%로 인상된 후 차례로 0.5%, 0.75% 과감한 인상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 행보는 0%였던 기준금리를 2023년 7월 5.25~5.5%까지 들어올리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더 일찍 조치를 취할 수는 없었을까요?
혹시 일본이 90년대 초 부동산 버블을 막기 위해 당시 미에노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과감한 금리 인상을 했고, 이로 인해 일본 부동산 시장이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다는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일본은 2.5%였던 기준금리를 6%까지, 단기에 3.5%p 인상해 파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은 0%였던 금리를 1년여 만에 5.25%까지 올린 겁니다. 과거 일본보다 훨씬 강력한 인상을 단행한 거예요.
이 과정에서 실수와 불운이 동시에 작용했습니다. 1년만 미리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저렇게 강해지는 것을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었을 겁니다. 미리 약을 먹었다면 조금 짧게, 그리고 덜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대목이죠. 그리고 불운도 있었는데요,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겁니다.
예기치 못한 전쟁이 터지면서 국제유가는 순식간에 배럴 당 145불까지 치솟았어요. 국제유가의 급등은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에 연약했던 세계 경제에 공급 부족으로 인한 타격을 줬죠. 이에 과감한 금리 인상이 시작되었음에도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9.1%까지 상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올라버린 물가를 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더더욱 매우 빠른 속도로, 금리를 크게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금리만 가지고 물가를 잡는 덴 한계가 있다고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코로나19 당시에 지급했던 수많은 보조금 제도들을 폐지하면서 정부의 재정 지원 역시 상당 수준 줄어들었고요, 렌트비 보조금 지급, 학자금 대출 탕감 등의 부양책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수많은 특별 저금리 자금 대출도 줄어들게 되죠. 네, 과도하게 치솟는 인플레이션 앞에서 연준과 미국 행정부는 예를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강한 긴축으로 대응했던 겁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은 과거 석유 파동 이후 이런 형태의 예외적인 원유 공급 제한 사태에 대비하고자 상당량의 원유를 모아두고 있었죠. 1970년대 후반부터 무려 40여 년 동안 모아왔는데요, 이번에 유가 상승을 막고자 그 3분의 2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상당한 양의 원유 공급이 이뤄졌고, 국제유가는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으면서 현재 배럴 당 80불 수준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런 전방위적인, 그리고 적극적인 대응은 바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했죠. 2022년 6월 9.1%로 정점을 형성했던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강력한 긴축과 국제유가를 누르기 위한 각종 정책 등에 힘입어 빠르게 안정되면서 불과 1년 만인 2023년 6월 3%로 하락하게 됩니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물가 상승률 수준은 연 2%죠. 지금 상황에서는 아예 안 오르면 참 좋겠지만 물가 상승을 0%로 만들어놓을 수 없으니 2%를 목표로 하고 있는 건데요, 3% 수준까지 하락했다면 이제 2%라는 고지가 머지 않은 겁니다.
인플레이션 조절에도 다이어트처럼 정체기가 왔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안정세를 보이는 물가에 시장은 환호성을 보내기 시작했죠. 물가가 안정되는 것 자체도 좋은 일이겠지만, 더 흐뭇한 것이 있습니다. 네, 물가가 안정되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연준은 5.25%까지 기준금리를 인상했습니다. “와아, 금리 높다…” 라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물가만 안정되면 “내릴 금리 엄청 많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금리를 저만큼 낮춰주면 돈이 풀려나올 텐데요, 그럼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돈 풀기가 강화되면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과 같은 자산 시장은 다시 한 번 뜨거운 모습을 보이게 되지 않을까요?
2023년 6월에 3.0%를 찍은 소비자물가지수에 시장 참여자들이 얼마나 열광했는지를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요, 조금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시면 2024년 5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상당히 안정되었다고 하는데요, 3.4%를 기록했다고 하죠. ‘겨우?’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23년 6월에 3.0%까지 내려온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다시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3%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여전히 미국의 금리는 상당히 높고, 우리도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해 힘든데 말이죠. 왜 물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잘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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