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로 변신하는 미국의 사무실들

🔍 전문가 칼럼
청년 주거 세계여행
아파트로 변신하는 미국의 사무실들

글, 어예진

📌 필진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경제TV에서 기자와 앵커로 일했고요. 지금은 국내 경제, 그리고 해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뉴스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탐구하는 연구자이자 방송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청년 주거 정책을 돌아보는 ‘청년 주거 세계여행’. 이번 칼럼은 머니레터 편집부의 요청으로 대학생 어예진의 미국 주택 생활기를 담아봤습니다. 어 소장의 라떼 시절에서 출발해 현재로 이어지는 미국 여행, 함께 떠나보아요.


꽁꽁 얼어붙은 창문 위로 청설모가 걸어 다닙니다


저는 미시간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겨울이 매우 추운 곳이죠. 영하 23도까지 기본으로 내려가던 곳이었는데요. 이른 아침 환기를 하려고 하면 창문이 얼어 열지 못할 정도였답니다. 그 문을 열어보겠다고 끓는 물을 창틀에 부어 문을 열었는데… 환기하는 사이 창문이 다시 얼어 닫히지 않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결국 다시 물이 끓을 때까지 미시간 칼바람에 호된 교육을 받았던 슬픈 이야기가 있답니다.

미시간은 눈도 참 많이 옵니다. 겨울철 미시간주 예산의 70%가 제설에 쓰일 정도지요. 눈이 오면 도로는 회색 슬러시로 변하지만 반나절도 되지 않아 깨끗해지곤 했습니다. 밤에 눈이 종아리까지 오기에 “내일 학교 쉬겠군…” 하는 은은한 기대를 안고 잠들면 휴강을 알리는 이메일은 오지 않고, 이른 아침 깨끗하게 치워진 등굣길을 마주하곤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개교 이래 169년 동안 학교 문을 아예 걸어 잠근 건 단 네 번뿐이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눈이 참 많이 오고, 그만큼 제설 작업도 발달한 도시에서 20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벽부터 냄새까지, 옆집과 공유하는 게 많은 곳


미국의 주택 형태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 됩니다. 단독 주택(싱글하우스), 옆집과 벽을 공유하는 타운 하우스, 하나의 하우스에 2~4가구가 함께 사는 다세대주택 개념의 멀티 유닛, 그리고 지역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한 콘도와 아파트가 있습니다. 


콘도는 우리로 따지면 주상복합에 가깝고, 아파트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세대가 사는 빌딩을 말합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 나오는 모니카의 아파트가 전형적인 미국 도심의 아파트죠. 

아파트는 우리나라처럼 집마다 주인이 있지 않고 주택 업체가 관리하고 임대를 주는 방식인데요. 주택마다 파티 허용 여부, 반려동물 가능 여부 등 조건이 다르고, 반려동물의 경우 추가 부담금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타운하우스는 벽을 옆집과 공유하기 때문에 소음이나 냄새 등에 취약해요. 


미국 주택 문화에서 한 가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집주인이 집을 팔기 전에 하자 보수를 하고 청소 업체를 부르고, 가구를 재배치하고 소품을 활용해 인테리어를 하거나, 정원을 가꾸는 등 집을 최대한 완벽하게 가꾼다는 점입니다. 집을 더 좋게 보이도록 해서 가격을 높이는 거죠. 계약 단계에서 혹시라도 결함이 발견되면 가격이 깎이거나, 아예 거래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 지역 아주머니들과 커뮤니티 활동을 함께 하면서 전형적인 미국 시골 싱글하우스에 놀러 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대단히 크지 않아도 정원과 차고가 딸린 근사한 2층 주택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의 단독 주택 모습이죠.

그런 집들은 차 없이 어떻게 찾아올까 싶을 정도로 허허벌판 한 가운데 있기도 하고, 토네이도라도 오면 날아가는 건 순식간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간결하게 지어진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미국 시골에 목조 주택이 많은 이유는 저렴한 가격, 그리고 땅이 넓어 공장에서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운반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입니다. 


대학생도 예외 없는 주택의 세계

 

학생이라면 거주 옵션이 더 있습니다. 기본 다섯 가지 형태에 기숙사, 학교 아파트, 홈스테이 정도가 더해져요. 학생들 대부분은 전형적인 주택보다는 또래와 어울리고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학교 주변 시설을 선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를 중심으로 학생들 생활 방식에 맞게 설계한 주택 건설은 대표적으로 돈이 몰리는 시장이죠.


실제로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2~3층짜리 낮은 상가 건물들만 있던 학교 앞 중심 도로가 지금은 1층에 상가, 그 위로는 최신식 주거 형태로 만들어진 고층 콘도들로 가득 찼다고 하네요. 2023년 기준, 미국에서 대학 캠퍼스 주변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 임대 주택의 평균 임대료는 600달러에서 2,600달러 사이입니다. 도시, 캠퍼스와의 거리, 아파트 유형 등 요소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에요.


미국 학교는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학교 안에 기숙사만 여러 개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뷰가 좋고 최신식일수록 가격도 비싸고 경쟁도 치열하죠.(주택이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저 때는(이 말 안 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과 학교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80년은 족히 넘은 오래된 전통 고딕 양식의 기숙사 지원율도 매우 높았답니다.

1938년에 지어진 기숙사 건물 내외부. 출처: Michigan State Unversity


대도시의 주택 형태가 바뀌고 있다

 

주택난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같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들은 그 상황이 매우 심각한데요. 사무실은 남아도는데, 사람 살 주택이 턱없이 부족한 그런 상황입니다. 


올해 2024년 1분기 미국 전체 사무실 공실률은 19.8%로 새로운 정점을 찍었습니다. 뉴욕 맨해튼이나 샌프란시스코같이 사무실이 밀집한 곳의 공실률은 각각 21%, 32.5%로 훨씬 더 높습니다. 최근 뉴욕 미드타운으로 출퇴근하는 근로자 수는 3분의 1로 감소했고, 다운타운의 경우 50% 가까이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게 다 팬데믹 이후 여전히 원격근무를 유지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죠. 


반면, 뉴욕 맨해튼 아파트 전체 공실률은 1.4%입니다. 방 100개 중에 한 곳은 비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기존 세입자가 나가고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기까지 비어있는 기간이 반영되면서 1.4%라는 숫자가 나왔을 뿐이지 그냥 꽉 찼다는 얘기입니다. 맨해튼 주택 시장은 지금 50년 만에 가장 빡빡한 시장이에요. 그래서 가격도 매우 비쌉니다. 뉴욕대학교 근처에 있는 원룸 아파트 평균 임대료는 한 달에 500만 원을 훌쩍 넘습니다.


높은 렌트비 부담에 학생들을 비롯한 직장인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외곽으로 나가 살거나 룸메이트를 구해 함께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하나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어요. 바로 기존의 오피스 빌딩을 아파트로 용도 변경 하는 겁니다. 팬데믹 시기인 2021년부터 이런 변화는 줄곧 있었는데 그 사례가 3년 만에 4배 넘게 늘었습니다. 


사실 똑같은 사례가 과거에도 뉴욕에서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뉴욕은 지금처럼 오피스 공실이 매우 많았는데요. 당시 뉴욕 주지사가 B급 오피스 건물을 주택으로 변경하면 부동산세를 거의 제로에 가깝게 낼 수 있는 세제 혜택을 도입했습니다. 당시 15,000호가 넘는 아파트가 만들어졌는데, 현재 맨해튼 고급 아파트 중 일부가 그때 사무실에서 용도 변경을 통해 아파트로 바뀐 것들이에요. 지금도 맨해튼 금융 지구의 22층짜리 오래된 오피스 빌딩이 1,200가구의 주택으로 개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사무실을 주거 공간으로 바꾸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자칫하면 용도 변경 승인에만 수 년이 걸리기도 하죠.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애초부터 주거용과 상업용 양쪽으로 쓸 수 있는 복합 용도 건물 위주로 공사에 들어갑니다. 행정 처리 외에 공사도 쉽지 않죠. 텅 빈 공간에 책상만 있던 사무실을 여러 개의 집으로 최대한 많이 만들려면 머리를 아주 잘 써야 합니다.

(좌)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의 구조

출처: gensler

(우) 주거용으로 변경한 건물의 구조.
출처: gensler

미국에서는 창문이 있어야만 bedroom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어요. 그래서 수요가 많은 원룸, 투룸 구조의 집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임대하려면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방마다 만들어야 합니다. 


그뿐인가요? 파이프라인부터 배선 작업, 비상구, 엘리베이터 등 주거에 걸맞은 구조로 바꾸는 공사는 자칫하면 새로 건물을 짓는 것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건물 용도 변경으로 이익을 남기려면 건물 매입 비용이 그 건물 땅값만 주고 샀다고 할 정도로 저렴해야 합니다. 실제로 건물 거래 내역을 보면 10년 전 가격보다 더 싸게 팔린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미국의 주택 형태는 크게 5가지입니다. 아파트, 싱글하우스, 콘도, 타운하우스, 멀티유닛
  • 미국은 집을 팔 때 최대한 가격을 높게 받기 위해 보수 공사, 청소, 인테리어를 합니다. 결함이 발견되면 거래가 중간에 취소되기도 합니다. 
  • 학생이라면 거주 옵션은 좀 더 늘어납니다. 기숙사, 학교 아파트, 홈스테이
  • 민간 임대 주택 시장의 공급이 줄고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학생 대상 주택 수요도 높아졌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주변에 지어진 학생 전용 주택 건설 투자에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 미국 대도시에 사무실 공실률은 늘고 주택 공급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뉴욕은 사무실을 아파트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늘어나는 주택 수요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어 소장의 추억이 담긴 미국의 주택 이야기 어떠셨나요? 다음 주에도 흥미로운 이웃 나라의 주택과 주거 정책 이야기로 만나요. 


💌 <청년 주거 세계여행>은 매주 수요일 머니레터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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