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1929 QnA

글, 

다섯 번에 걸친 ‘대공황1929’ 시리즈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질문 중에서 질문 네 개를 꼽아보았어요.

Q: 대공황 끝나고 대압축 시대라고요? 왠지 부정적인 느낌인데요?
A: 사실 엄청나게 긍정적인 이름입니다!

대압축의 시대(The Great Compression)는 미국의 1940년대와 1950년대를 말합니다. ‘압축’이라는 단어에서 부정적인 인상을 받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굉장히 긍정적인 개념이에요. 

압축이라는 말은 줄어들고, 감소한다는 뜻이에요. 이때 무엇이 줄어드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요. 당시에는 ‘불평등’이 어마어마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상위 1%의 소득과 나머지 99% 소득 차이가 줄어든 거예요. 

그러니까 대압축은 소득격차가 줄어들고 부의 분배가 활발했던 시대를 가리키는 개념이에요.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이 이 시기에 태어납니다. 대압축의 시대는 1970년대에 끝나면서 다시 부의 양극화가 심해졌어요.

Q: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자는 공식 회의 같은 게 있었나요? 
A: 바로 1944년의 브레턴우즈 협정입니다!

생각해보면 ‘기축통화’가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그런 걸 만들었는지, 국제 경제 시스템이 어떻게 기축통화를 기준으로 돌아가게 됐는지 아리송하단 말이에요.

기축통화는 ① 고대 그리스·로마나 고대 송나라·고려 시절 이전부터 자연스레 존재했던 동시에 ② 19세기 이후 시장경제 시스템을 가진 국가들이 모여서 ‘우리는 기축통화를 인정하기로 했어’라며 합의해서 만든 금융의 도구입니다.

②에 대해 조금 더 말해볼게요. 자본주의 초기, 사람들은 돈이 금과 직접적으로 교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금본위제예요. ‘금 교환권’이 아닌 지폐는 불안했던 거예요.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면서 금본위제가 여러 문제를 일으켜요. 경제 규모가 커지면 돈이 더 필요한데, 돈을 찍어내는 만큼 금도 더 캐내야 하잖아요. 

그래서 1920년대와 1930년대, 각국은 금 대신 힘 센 통화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영국에 수출해서 먹고 살았는데, 국가 경제를 영국의 파운드와 맞추면 편하니까요.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으로 전 세계의 1/4이 영국 식민지였어요. 영국 식민지는 파운드를 기축통화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영국 식민지와 주로 수입·수출하는 국가들도 파운드를 기축통화로 받아들였어요. 기업들은 물론 정책적으로도요.

기축통화가 영국 파운드에서 미국 달러로 옮겨간 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였습니다. 다들 미국과 거래를 훨씬 많이 하게 되었거든요. 

이미 기축통화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판이 짜여 있으니, 공식적으로 영국이 미국의 기축통화국 자리를 인정하기만 하면 술술 풀리는 상황이었어요.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과 1945년 영·미 금융협정에서 미국이 앞으로 기축통화국이 되기로 약속합니다. 이후 그 약속에 맞춰 세계 경제 시스템이 돌아가게 됩니다. 

Q: 대공황 이야기엔 유럽하고 미국만 나오고… 아시아는 어땠어요? 
A: 사정이 아주 복잡했어요.

아시아는 보통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로 나눕니다. 동남아시아부터 말하자면 대공황 발생 당시 타이(Thailand)를 제외하고는 모두 식민지였어요. 

식민지의 경제구조는 설명하기 복잡합니다. 지배국가의 정책이 그 무엇보다 큰 영향을 끼치니까요.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도 비슷한 처지였어요. 

1929년 대공황 발생 당시 중국은 청나라가 멸망한 지 20년쯤 된 시점이었습니다. 나중에 공산당에 쫓겨 대만으로 이주해가는 국민당이 중국의 새로운 정부였던 때예요.

산업화와 근대화가 한창이던 중국에서는 대공황의 직접적인 피해는 적었다고 평가돼요. 경제 시스템이 너무 달랐기 때문인데요. 당시 1인당 생산성이 꾸준히 증가했고, 화폐를 금이 아니라 은에 맞추고 있어서 더욱더 대공황의 영향이 적었다고 해요.

아시아 국가 중, 대공황 때문에 사정이 어려워진 나라를 꼽자면 역시 일본입니다. 일본은 1920년대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대공황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일본은 이때의 경제위기를 쇼와대공황이라고 불러요. 

일본은 대공황을 2년 만에 탈출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중앙집권적인 정부가 기업에 미치는 힘이 강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나 부양책도 빠르게 추진될 수 있었어요. 

정부 부양책은 기본적으로 정부지출과 정부투자로 이루어져요. 일본의 부양책은 군비지출이었고, 군비를 증강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Q: 대공황과 다른 경제 위기들 사이의 연관성이 궁금해요! 
A: 새로운 위기는 일상이 당연해질 때 찾아와요 

경제위기는 이전 경제위기보다는 ‘이전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찾아온 후의 일상’과 더 관련이 깊어요. 

대공황은 평소에 정부가 너무 자유방임주의적으로 굴어서 찾아온 위기예요. 그러니까 대공황을 극복했던 방법은 정부가 돈을 많이 쓴 복지라든가, 자동차 대량생산 같은 기술 혁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정부 지출이 과도해지고, 자동차를 안 산 사람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자동차 회사의 매출이 줄어들고, 주가도 더는 상승하지 않겠죠. 경제위기는 바로 이 순간 찾아옵니다. 일상이 위기를 낳는 순간이죠.

이 글을 쓰는 데 참고한 자료

  • 아키모토 에이치. (1995).일본인이 쓴 미국 경제의 역사. 합동국제문화센터
  • 이헌대. (1999). 세계대공황의 원인과 경제정책. 경제사학.
  • Paladini, Stefania. “China during the Great Depression: Market, State, and the World Economy, 1929-1937.”(2011)
  • Masato Shizume, The Japanese Economy during the Interwar Period: Instability in the Financial System and the Impact of the World Depression(2009)

어피티의 코멘트

  • 정인: 대공황 이야기에 좋은 반응을 많이 주셨어요. 저도 쓰면서 즐거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1970년대의 오일쇼크를 다루는 콘텐츠를 들고 찾아올게요. 오일쇼크 때의 인플레이션이 대공황보다 조금 더 현재 경제 상황과 닮은 점이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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