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뭔데 날 평가해?

글, 정인 금융 공부를 시작하면 맨 먼저 관심이 가는 것 중 하나가 ‘’입니다.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꼭 등장하는 개념이거든요.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 국가도 신용도를 평가받습니다. 

최근 중국판 ‘ 사태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만들었던 헝다 그룹은 피치 됐다고 해요. 헝다에 돈을 빌려준 투자자들에게 무척 안 좋은 소식이에요. 

반면, S&P가 우리나라의 현대차그룹의 실적이 안정적이라며 한해 했죠. 작년 우리나라에 호의적이었던 무디스는 해 주었고요. 

무디스, 피치, S&P라니. 무슨 복숭아 통조림에 피아노 브랜드 이야기냐고요? 아니랍니다. 바로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이름이에요. 이쯤 되면 기분이 약간 보글보글 거품을 일으키면서 이런 생각이 들죠. ‘니들이 뭔데 날 평가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기준

🎬 Scene #1. 

어피티: 그런데 우리 같은 개인이야 그렇다 치고요, 세계 3대 신용평가사라는 회사들은 대체 뭔데 나라들을 평가하나요?

옛날 사람: 하하, 이것 참. 옛날얘기를 해드려야겠군요. 라떼는 말입니다, 한국엔 신용평가사가 있지도 않았어요.

어피티: 한국에 신용평가사가 언제 생겼는데요?

옛날 사람: 1980년대요. 하지만 무디스같이 유명한 국제 신용평가사는 1903년에 이미 유명해졌지요… 한국은 임시정부 생기기도 전이라니까요.

어피티: 무디스면… IMF 때 라고 욕 엄청나게 먹은 회사네요?

옛날 사람: 무디스만 욕먹은 건 아니죠.

IMF 외환위기 직전,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Moody’s)와 (Standard&Poor’s), (Fitch)는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최대 12단계까지 강등했습니다. 그것도 한 번에 내린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내렸어요. 

자고 일어나면 한 단계 더 내려가 있고, 이틀 뒤에 보면 또 내려가 있고, 일주일 뒤에는 새로운 위험이 발견됐다며 더 내리는 식으로 최대 열두 단계를 연쇄적으로 내려버린 거죠. 이 방식이 신용등급을 한 번에 크게 내리는 것보다 불안감을 더 자극합니다. 대체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당시 국제신용평가사들을 ‘저승사자’로 불렀던 이유입니다.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위기에 확실한 치명상을 입혔다는 의견도 있어요. 이쯤 되니 더 궁금해집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뭐길래 국가를 평가하는 걸까요?

라떼는 무디스가
출판사였다네

가장 오래됐고, 많은 국가와 금융기관을 평가하며, 전 세계 언론에서 자주 인용되면서 회사들이 가장 많이 참고하는 국제 신용평가회사 세 곳을 ‘세계 3대 신용평가사’라고 합니다. 무디스와 피치와 S&P 세 곳이에요. 이 중 무디스의 이야기가 제일 유명합니다. 

무디스는 처음에 미국의 출판사였습니다. 소설이나 동화를 출판하는 곳은 아니었고, 각종 시장 통계를 모아서 책을 냈습니다. 책의 이름은 <Moody’s Manual of Industrial and Miscellaneous Securities>. 정부의 공공기관과 각종 산업의 통계, 회사와 은행들의 주식과 채권에 대한 잡다한 통계를 모아낸 책이었죠. 여기서는 간단하게 ‘무디스 매뉴얼’이라고 할게요. 

지금으로 치면, 무디스 매뉴얼은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이나 국토연구원의 경제동향브리프 또는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 각 회사 홈페이지의 IR 메뉴, 매년 나오는 서적 <트렌드 2021>과 비슷한 상품이었죠. 당시에 이 무디스 매뉴얼이 완전히 대박을 터뜨립니다. 1903년, 그러니까 책이 출간되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전국적으로 인정받게 돼요.

최초의 유선전화가 발명된 지도 30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절, 그리고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가는 게 한 사람 일생일대의 도전이기도 했던 시절. 뉴욕에 있는 은행의 경영 상태라든가 미국 철강 공장의 연간 판매량 같은 걸 일반인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디스 매뉴얼이 나오면서, 일반인이 미국의 시장이 돌아가는 판을 대충 파악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전문 투자자나 기업인에게도 좋은 참고 자료였지만 일반인에게도 주식과 채권 등 금융상품에 익숙해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특히 해외 투자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였어요.

🎬 Scene #2. 

어피티: 그렇게 오늘날의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된 건가요?

옛날 사람: 그런 건 아닙니다. 혹시 세계 경제 대공황이 언젠지 아세요?

어피티: 1929년에서 1939년까지 10년 정도요.

옛날 사람: 그때 거의 모든 회사가 줄줄이 부도가 나고 파산을 했는데… 무디스가 괜찮다고 평가했던 회사들은 대부분 . 다른 주식들이 휴지조각이 될 때 무디스가 찍은 회사들의 주식은 투자자들의 자산을 지켜낼 수 있었죠.

어피티: 우와… 

옛날 사람: 무디스가 지금의 무디스가 된 이유죠.

피치와 S&P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치는 회사와 회사의 보안에 대한 통계 보고서를 제공하는 출판사로 시작했습니다. S&P는 현재까지도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출판사를 소유하고 있어요. 대학원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모두가 알 만한 출판사, 이죠. 미국의 대학 교재를 거의 독점하고 있는 출판사예요.

신용평가사가
막강해진 이유

굳이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순위를 매기라면 S&P가 1위, 무디스가 2위, 피치가 3위 정도 됩니다. 전 세계 모든 고급 학문 교재를 출판하는 맥그로힐이 책 내에서 S&P 지수를 자주 인용하면서 영향력이 더 커지기도 했어요. 

🎬 Scene #3.

어피티: 스토리만 보면 무디스가 1위일 것 같은데요.

옛날 사람: 무디스가 좀 극적이죠? S&P는 원래 Poor라는 사람이 세운 회사인데요. 무디스보다 좀 더 체계적인 단일업종 기업분석으로 시작했다가, 1941년에 Standard라는 통계정보기업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S&P가 된 거라 아무래도 창업 스토리에 드라마틱한 맛은 좀 떨어져요.

어피티: 여하튼, 그래서 다들 투자 정보를 필요로 하면서 신용평가사들이 지금처럼 커진 건가요? 신용평가사가 신용등급 매길 때마다 신문 1면에도 나고, 지상파 뉴스 앞쪽에 뜨잖아요.

옛날 사람: 그건 또 다른 이유가 있죠.

사실상 3대 신용평가사의 평가가 웬만한 나라를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IMF 시절의 한국이었죠. 그런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까지 힘이 세진 걸까요? 정답은 ‘미국’ 때문입니다.

1929년에서 1939년 사이, 전 세계가 대공황을 겪은 뒤, 미국 정부는 다시는 대공황 같은 사태를 맞이하지 않도록 . 당시에 수많은 기업이 망하는 와중에도 신용평가사에서 ‘투자 적격’이라고 했던 회사들이 많이 살아남은 걸 보면서, 신용평가사의 평가에 투자 결정을 의지하기로 한 거예요. 

그렇게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자국 은행이 채권을 사려고 할 때, 신용평가사가 ‘투자 적격’ 등급으로 평가한 채권만 살 수 있게 했습니다. 또 기업이라면 반드시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평가받도록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1973~1975년 사이 신용평가사의 위상은 지금처럼 강해지게 되죠.

🎬 Scene #4.

어피티: 신용등급 평가를 의무화하는 건 좀…  신용평가사를 너무 지나치게 신뢰하는 거 아닌가요?

미국 정부: 맞아요. 신용평가사도 틀릴 수 있죠. 그래서 도 많았고요. 그런데 신용평가사 아니면 어떻게 기업 안정성을 점검하겠어요? 대안이 나올 때까진 이대로 가는 거죠.

미국에서는
미국 법을 따르라

무역이 활발해지고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어 다니면서 경제는 세계화 시대에 접어듭니다. 전 세계 최대의 소비자인 미국과 중국, 그중에서도 미국의 힘은 막강하죠. 미국에 물건을 팔거나 투자를 받으려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합니다. 미국 법을 따르려면 다른 나라들도 미국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을 평가받아야 하고요. 

세계 3대 신용평가사는 그렇게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됐답니다. 어쨌든 기업과 국가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라는 사실이 그 영향력을 뒤받쳐주죠.  오늘은 국제신용평가사들과 국가신용등급의 대략적인 역사를 다뤄보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① 그래서 대체 신용등급은 어떻게 매겨지며, 무슨 역할인지 ② IMF 때 우리나라가 신용등급 때문에 어떤 타격을 받았다는 건지 ③ 요즘 신용등급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게요.

📚 <라떼극장>에 참고한 자료

  • Timothy J. Sinclair (2005). The New Masters of Capital: American Bond Rating Agencies and the Politics of Creditworthiness, Cornell University Press.
  • White, Lawrence J. (Spring 2010). “The Credit Rating Agencies”.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4 (2): 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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