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다 돈이었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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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6일, 대한민국 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씨*가 사망했습니다. 

뉴스가 나온 뒤, 장례 절차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습니다. 노태우 씨는 1995년 이후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약 3천억 원을 받고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기 때문이에요. 특별사면되면서 범죄자 신분으로 남지는 않았지만 ‘전직 대통령 어르신’으로 볼 수는 어렵다는 거죠.

the 독자: 잠깐만요. 이런 정치 시사적인 주제가 <머니레터>에 등장한 이유가 있겠죠?

어피티: 그럼요. 노태우 씨는 뇌물수수와 로 처벌을 받기도 했지만, 재직 중에도 기업·경제와 얽힌 일들이 참 많았거든요. 나름 잘한 것도 경제, 못한 것도 경제였다고나 할까요? 

이 글을 읽고 계신 님이 잘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구독자분들 대다수가 2030세대인데, 노태우 씨의 임기는 1988년부터 1993년까지였으니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노태우 정권 때 있었던 나라 경제 이야기. 큼직하게 두 개의 주제로 풀어볼게요! 

*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호칭 문제는 법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아직 . 다만, 전두환 씨와 노태우 씨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워낙 거세서 당시 언론들은 대부분 ‘전氏, 노氏’라고 지칭했어요.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지만 아직 많은 언론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보도하는 것과 대조적이죠.

첫 번째 이야기,
SK그룹의 풀네임은 선경그룹

the 독자: 선경그룹이 SK가 된 시점이 1997년 전후라던데요. 

어피티: SK 최태원 회장의 는 꽤 유명하죠. 노태우 씨의 빈소 조문을 온 최 회장에게 YTN 기자가 ‘’라고 묻는 바람에 한 번 더 술렁이기도 했어요.

the 독자: 1988년에 노태우 씨의 딸인 노소영 현 나비 아트센터 관장과 결혼했으니까 그때부터 노태우 씨는 최태원 회장의 장인이었겠네요. 그런데요, 아무리 재벌가라도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이 자꾸 이슈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어피티: 맞아요. 하지만 집안사가 유명해진 배경이 바로 ‘뇌물공여죄’와 관련돼 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죠?

원래 섬유화학과 건설을 주력으로 하던 선경그룹은 1994년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갑자기 통신사업에 나섰습니다. 통신사업은 SK그룹을 국내 몇 대 재벌가로 만드는 데 큰 계기가 됐어요. 그리고 바로 이 과정에서 했다고들 해요. 

물론 SK그룹은 통신사업을 오래 준비해 왔다며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와 노태우 씨가 선고받은 경제범죄인 뇌물공여죄를 생각해보면 SK그룹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믿어주기는 조금 어렵죠.

노태우 씨의 뇌물공여죄는 을 받은 것에 선고됐습니다. 1993년 기준, 으로 34평 아파트가 약 2억 6천만 원에 거래된 셈이니 2,708억 원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감이 오시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됐을 때도 ‘노태우 뇌물공여 사건’이 끌려 나왔습니다. 삼성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과 특혜를 주고받은 게 는 거예요. 

두 사건 모두 지금까지도 누가 잘못을 했니 안 했니, 얼마나 잘못했니 하는 얘기가 무성합니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일반 시장참여자 입장에서는 정치권과 재벌기업 사이에서 누가 입김을 불었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문제예요.

시장은 공정하고 건전한 질서 속에서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엄청난 초능력을 가진 병약한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예요. 

시장은 전 인류를 ‘경제활동’으로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힘이 세지만, 조금만 외부상황이 나빠져도 초능력이 얼마나 강하든 상관없이 병원으로 달려가야 목숨을 건질 수 있죠. 

기업의 이나 그것을 용인해주는 부패한 정책은 시장질서를 갉아먹는 독과 같아요. 그래서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기업인이 바친 뇌물과 관련된 부정부패를 매우 강하게 처벌하죠.

두 번째 이야기,
신도시 n기가 시작되다

노태우 씨가 집권할 당시, 글로벌 경제는 그 유명한 ‘’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금리가 낮아 회사가 돈을 마음껏 빌려 장사했고, 유가가 낮아 공장을 돌리는 데 비용 부담이 적었어요. 게다가 달러가치도 낮아서 환율도 유리했죠. 

우리나라 경제 역시 ‘’이라고 불릴 정도로 잘 나갔습니다. 세 가지 키워드로 그 당시를 살펴볼까요?

① 자동차

1990년대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주차장이 잘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죠? 당시에는 차가 집보다 고급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이에요. 집은 초가집도 집이지만 차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거든요. 

그런데 노태우 씨의 집권 시기에 ‘’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집집마다 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꿈 같은 일이 실제로 달성됐죠. 

② 소득

1인당 (GNI)이 고소득 국가의 절반인 5천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제 ‘먹고 사는 거 말고도 다른 데 돈을 써볼까?’라고 할 수 있게 된 거죠.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연 10% 이상씩 성장했고, ‘중산층’ 비중이 75%를 넘었답니다. 

UN이 최빈국으로 분류하는 기준은고, 세계은행(WB)이 고소득 국가로 분류하는 기준은 예요. 현재 우리나라 GNI는 . 

③ 부동산

였어요.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밀려들면서 집은 물론  터져나갔죠. 

노태우 정부는 서울에 주택 200만 호를 공급하고 수도권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지금 뉴스에 나오는 ‘n기 신도시’가 바로 이때 시작된 거예요. 을 만들어 를 통해 대기업들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매각하고, 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 일단 한 번에 대규모 주택을 공급하다 보니 건설경기가 과열되면서 부실공사가 엄청나게 발생했고, 집값도 폭등했습니다. .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정리했지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죠. 입니다. 

그래서 노태우 씨의 공과를 대등하게 두고 따지기에는 그 과오가 너무나 크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다는 소식에 반발도 컸어요. 

지금이라도 풀 수 있는 매듭은 풀고 가는 게 맞습니다. 경제만 하더라도 대통령과 기업의 뇌물 사건이 의혹이건 사실이건 반복되고 있고, 토지공개념이라든가 공시지가, 신도시도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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